금리·절세에 환차익까지 美채권 은근히 짭짤하네

문일호 기자(ttr15@mk.co.kr)

입력 : 2025.05.30 15:50:55 I 수정 : 2025.05.30 19:39:23
채린이, 채권매수 도전해보니





'100달러로 연 4.38% 이자를 주는 미국 채권 매수 완료.' 지난 5월 27일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삼성증권 파르나스금융센터WM지점을 방문한 이후 1시간 만에 이를 달성했다. 이 같은 채권 매수는 최근 대세다. 특히 금리가 높은 미국 국채가 인기다. 거래가 활발한 10년짜리 채권 금리는 최근 4.4%대, 30년물은 5%를 찍었다. 국내 예금 금리의 2배 수준이다. 예민한 투자자들이 이를 놓칠 리 없다.

이날 삼성증권을 찾았더니 채권시장 전망을 들을 수 있었다. 이 증권사 김미선 선임 프라이빗뱅커(PB)는 "자산가들은 부동산 수익률이 떨어지면서 뭉칫돈을 넣어둘 안전자산으로 미국 채권을 선택하고 있다"며 "금리가 2%대인 한국 국채나 시중은행 예금 금리보다 수익률이 높은 데다 채권 가격 상승에 따른 시세차익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돼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미국이 자국 국민의 세금을 깎아주겠다고 하는 '감세안'이 최근 미국 하원을 통과했다. 그렇지 않아도 빚이 많은데 재정 부담이 가중된다. 시장에선 채권 발행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한다. 자연스레 채권값은 떨어지고 금리는 높아진다. 채권 금리와 가격은 이처럼 반대로 움직인다. 고액 자산가들은 이 같은 채권 환경을 선호한다고 한다. 김 PB는 "채권 투자는 금리가 높을 때 투자해 이자를 확보한 채로 시세차익을 노리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환율 하락(원화값 강세)에 따라 향후 채권 매도 시 원화 환산 수익(환차익)을 추가로 기대해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과거엔 개별 채권(알채권)을 사려면 1000만원 이상 들고 와서 물량이 있는지 고객이 직접 확인해야 했다. 그러나 이젠 100달러만 있으면 미 채권을 곧바로 매수할 수 있으니, 소액 투자자들까지 채권으로 몰려가고 있다. 다만 직접 찾아오기보다는 온라인으로 거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채권 매수까지 1시간…투자성향 테스트 필요

채권 매수의 첫 단계는 '투자 성향 분석 테스트'다. 게임에서 하나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퀘스트'라고 하는데 이와 비슷하다. 미국 채권은 퀘스트에서 4등급(보통 위험)~5등급(낮은 위험)을 받으면 된다. 그만큼 투자 위험이 낮다는 뜻이다.

증권사에 따라선 미 국채를 포함해 모든 해외 자산 투자에 있어서 1등급(높은 위험)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브라질 등 신흥국 채권은 환율 변동도 커 위험하다고 한다.

이어 PB와의 상담이 20분간 진행됐다. 국내 기준금리 인하로 예금금리가 2%대 초반까지 떨어진 데다 부동산 기대 수익률 하락으로 채권에 대한 수요가 높다고 한다. 지점 방문 전 시중은행 예금금리를 찾아보니 2.2%대. 미국 채권이 4%대 중반이니 2배 수준으로 채권 투자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이 들었다. 김 PB 역시 "대부분 그런 마음으로 채권 투자에 나선다"고 답했다.

이어 투자에 필요한 다양한 서류 작업이 남았다. 서류에는 각종 투자 위험을 알리는 글자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중간중간 건너뛰면서 꼼꼼히 읽는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는 질문하면 된다. 요즘은 수기로 사인을 하기보다는 '잘 이해했음' '충분히 위험을 인식했음' 등의 문장을 고객이 디스플레이 패드 위에 꾹꾹 눌러 써야 한다. 시간이 걸렸지만 투자자 보호 장치로 이해했다.

만기까지 기간이 짧은 단기물이 유리하다는 조언을 받기도 했다. 올 하반기엔 채권값 상승이 기대된다는 이유에서다. 또 다른 PB는 "올 하반기 금리 인하가 기대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은행 규제 완화를 예고해 투자은행들이 단기채를 많이 사서 가격이 오를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증권사 애플리케이션(앱)을 스마트폰에 깔고 미 국채 단기물을 실제 매수하기까지 1시간이 걸렸다. 사실 이날 하루 전에 다른 중소형 증권사를 방문했다가 허탕을 친 것까지 감안하면 이틀이 걸린 셈이다. 26일은 미국 시장 휴장일(메모리얼데이)이어서 거래가 불가능했다.

국내에서 해외 채권 거래는 휴일을 제외하고 미국과 일본의 증시가 동시에 열리는 날에만 가능하다. 메모리얼데이여서 26일 오후 10시 30분부터 열리는 미 증시는 휴장이었다. 한국과 채권 거래 표준을 공유하는 일본 증시는 이날 열렸다. 정상 거래일이라면 같은 날 국내 채권 거래 시간(오전 9시 30분~오후 4시·삼성증권 기준)에 미 채권을 살 수 있다.

전날 채권을 매수하지 못한 또 다른 이유는 원하는 물량이 없어서다. 삼성과 같은 메이저 증권사는 채권 물량을 대량으로 확보해놓는다. 그러나 중소형사는 고객 기반에 따라 물량과 종류가 상대적으로 적다. 증권사와 고객이 물건을 주고받듯 채권을 거래하다 보니 증권사의 덩치가 중요하다. '채린이(채권+어린이)'로 대표되는 소액 투자자일수록 메이저 증권사 앱에 가입해야 하는 이유다.



은행 금리의 2배·절세·환차익까지

채권은 크게 국채와 회사채, 특수채로 나뉜다. 정부가 보증하는 국채와 달리 회사채나 특수채는 법인의 부도 리스크에 따라 금리가 더 높다. 채권시장에서도 투자 위험과 수익률이 비례한다. 최근 롯데손해보험 후순위채는 대표적인 특수채다. 코로나19 시절 5%대 금리로 나와 인기를 끌었다가 이번에 상환이 연기돼 투자자들이 애를 먹고 있다. 김 PB 역시 "무턱대고 채권의 금리 수준만 살필 게 아니라 신용등급과 상환 조건 등을 따져봐야 한다"며 "안정성은 채권의 신용등급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직접 매수한 미 채권의 이름은 'T 0.375 01/31/26'으로 신용등급은 'AA+'다. 투자자들은 채권명부터 확인하고 지레 겁먹기 마련인데, 알고 보면 세상 친절한 이름이다. T는 'Treasury'의 첫 글자다. 미국 재무부라는 뜻이며, 미국 정부가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하는 채권이란 의미다.

T 다음의 '0.375'는 표면금리다. 채권의 액면 가격에 대한 연간 이자 지급률을 채권 표면에 표시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표면금리는 채권 발행 시의 첫 시작 금리다. 나머지 '01/31/26'은 2026년 1월 31일이 만기일이란 뜻이다. 5년 만기 채권이어서 매수한 이 채권의 발행일은 2021년 2월 1일. 코로나 사태 직후라 금리가 낮았다. 이 채권은 6개월 단위로, 연 0.375%의 이자를 지급한다.

표면금리 0%대로 발행한 채권을 보유한 사람은 시장 금리가 현재 4%대로 상승했으니 보유 채권의 수요는 감소했고 가격은 떨어진다. 이 채권의 은행 환산 수익률은 4.38%. 이 수치는 은행 예금처럼 일반 투자 상품과 비교하기 위해 편의상 제공된다.

채권은 표면금리대로만 이자를 지급한다. 0%대 금리가 4%대 수익률로 바뀌는 것은 만기 시 보유했을 경우 시세차익이 포함돼서다. 금리가 올라서 가격이 쌀 때 샀으니 만기엔 높은 수익이 기대된다는 것이다.

다만 여기엔 일종의 '수익률 착시'가 있다. 매수 후 채권 매매 창에서 '수익률 및 이자'란을 확인했다. 여기에 세후 수익률 3.71%가 나온다. 이것이 투자자들이 받게 되는 진짜 수익률이다. 앞서 환산 수익률은 세금을 떼지 않은 수치이고, 세후 수익률은 이자에 대해 15.4% 가 적용됐다. 이 채권은 앞으로 만기까지 8개월 남았다. 이 채권을 매수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8개월 내에 금리가 내려가 채권값이 많이 오르면 매도해서 자본 차익을 남긴다. 두 번째 선택지는 금리가 현 수준을 지키거나 오히려 오를 경우 8개월간 그대로 보유한다. 채권은 만기까지 보유 시 원금 보장과 쿠폰 이자를 모두 받는다.



장기 채권 ETF는 원금 손실 가능성 높아

이 같은 채권의 장점은 국내 주식 투자자들은 물론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서학개미들이 주식에서 채권으로 돈을 옮기는 명분을 제공한다. '국민주' 삼성전자의 주가는 올해 들어 이날까지 1.1% 올랐다. 테슬라는 같은 기간 16%나 하락했다. 만기 시 원금 보장에 높은 금리, 원화값 강세로 인한 향후 환차익, 절세 효과까지 3대 호재가 채권시장을 빛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채권 투자자가 얻는 두 가지 이익은 가격 상승과 이자소득이다. 이 중 채권값 변동에 의한 시세차익에 대해서는 비과세다. 이자소득에 대해서만 15.4%의 이자소득세를 부과한다. 김 PB는 "채권을 대량 보유해 시세차익이 나더라도 애초에 과세 대상이 아니어서 세금을 아낄 수 있는 것은 기본"이라며 "채권으로 인한 이자소득이 연 2000만원이 넘지 않도록 채권 수량을 늘려가면 종합소득세 과세나 건강보험료가 오르는 것도 피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채권 투자가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앞서 제시한 호재가 모두 반대로 갈 경우 만기까지 보유해야 하기 때문에 돈이 묶일 수 있다. 반대 시나리오는 시장 금리 상승으로 채권값이 하락하면서 계속해서 환율이 상승하는 경우(달러 대비 원화 약세 지속)다.

또 채권 매도 시엔 주식처럼 투자자가 직접 판단하기 어렵다. 아직까지 채권 매매 앱에선 만기 전에 매도 시 종합수익률을 개인투자자가 정확히 알 도리가 없다. 그래서 지점에 전화를 해 현 수준에서 채권을 파는 것이 만기 보유보다 더 유리한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래의 편의성 때문에 채권 관련 상장지수펀드(ETF)가 대유행 중이다. 최소 거래대금이 없다 보니 소액 투자자들이 대거 몰리고 있다. 그러나 알채권과 달리 만기가 없다 보니 원금 보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주식과 비슷한 위험자산이란 뜻이다.

20년 이상의 장기 채권을 묶어놓은 미 채권 ETF인 'TLT'에 서학개미들은 8억달러(약 1조원)나 투자했다. 이 TLT에는 코로나 시기인 '제로금리'(시장 금리 0%대) 시절 발행 물량이 많이 포함돼 있다. 이후 금리 급등에 따른 가격 하락을 피할 순 없었다. TLT 주가는 올 들어 -3%, 최근 1년 -6%를 넘어 최근 5년 기준 반 토막(-48%)이 났다. 미 채권을 담고 있는 국내 상장 ETF의 경우 연금저축펀드 등 절세 계좌로 투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유의할 점이 많다. 장기물 위주의 채권 ETF는 가격 변동성이 크고, 코로나 이후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문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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