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으면 빚더미, 안 닫으면 적자”...자영업자 연체율, 10년만에 최고치

곽은산 기자(kwak.eunsan@mk.co.kr), 이유진 기자(youzhen@mk.co.kr), 이윤식 기자(leeyunsik@mk.co.kr), 한상헌 기자(aries@mk.co.kr)

입력 : 2025.06.26 06:09:21
1분기 자영업 대출 1067조원
1년새 11조 늘고, 연체 급증

폐업 때는 빚 한번에 갚아야
울며 겨자먹기로 영업 지속
적자 쌓이고 다시 빚에 의존

정부 배드뱅크 추진하지만
빚탕감으로는 악순환 못끊어
폐업·재취업 ‘출구’ 열어줘야


1분기 자영업자의 대출 규모가 1067조원으로 한은이 25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앞 상점가에 폐업 전 마지막 바겐세일을 하는 안내 현수막이 붙어 있다. [한주형 기자]


# 경기도 용인에서 대형 PC방을 운영했던 A씨는 폐업을 결심하고도 1년 넘게 절차를 밟지 못했다. 매장을 원상 복구하기 위해 철거비와 남은 월세 등을 내는 데만 3000만원이 필요했다.

폐업하면 기존 대출을 한꺼번에 갚아야 하는 부분도 발목을 잡았다. A씨는 금융권에서 3억원 넘는 대출을 받아 매출 중 40%를 원금 상환과 대출 이자로 냈다. A씨는 “문을 열수록 적자지만, 폐업도 여의치가 않다”고 토로했다.

[매경DB]


# 지난 9월 경기도 성남에 무인점포를 열었던 40대 이 모씨는 창업 6개월 만인 지난 3월 점포를 내놨지만, 인수자를 찾지 못해 개점휴업 상태다. 이씨는 초기 비용 5500만원을 들여 무인점포를 열었는데, 하루 매출이 2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월 매출 400만~500만원에서 물건 대금을 갚고 임대료·전기요금 등 고정비용 180만~200만원을 내면 이씨 부부가 가져가는 돈은 없었다.

이씨는 “위약금을 내고 가게를 빼는 방법도 생각해봤지만 결국 매달 150만원씩 손해 보는 건 마찬가지였다”며 “무인점포를 3개 정도 관리하면 월 300만원은 가져갈 수 있을 것으로 계획했는데, 인건비는커녕 1년도 안 돼 빚만 1000만원 늘었다”고 한탄했다.

서울 종로 종각역 젊음의 거리 일대의 자영업 상권이 손님의 발길이 끊긴 채로 한산하다. [한주형 기자]


내수 부진으로 골목상권이 흔들리면서 대다수 자영업자가 가게를 유지하지도 폐업하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장기화된 경기 침체로 대출 규모와 연체가 동시에 증가하는 상황에서 단기적 빚 탕감만으로는 구조적 어려움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5년 상반기 금융안전보고서에 따르면 1분기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1067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2022년 하반기 이후 증가세가 다소 둔화됐지만 전년 동기 1055조9000억원과 비교했을 땐 1.1% 증가했다. 신용도가 하락한 자영업자가 주로 찾는 비은행 대출은 425조7000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1.5% 늘었다. 은행 대출은 641조9000억원으로 0.9% 증가했다.

자영업자 가구는 비자영업자 가구에 비해 소득 대비 부채 부담도 크다. 자영업자 가구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은 2600만원으로 비자영업자 가구(1900만원)보다 약 40% 많았다.

실제 자영업자 가구의 처분가능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34.9%로 비자영업자 가구(27.4%)보다 높았다.

그만큼 자영업자 가구의 소득 대비 상환 부담이 큰 상태라는 뜻이다. 자영업자 가구 중 3.2%는 자산과 소득 측면에서 모두 상환 능력이 취약한 고위험 가구로 분류됐다.



특히 다중채무자이면서 저소득·저신용인 취약 자영업자의 연체율은 12.24%로 비취약 자영업자(0.46%)에 비해 26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자영업자 연체율은 1.88%로 2012년 이후 장기 평균인 1.39%를 웃돈다. 2015년 1분기(2.05%) 이후 10년 만에 최고치이기도 하다.

한은은 “서비스업 경기 부진 등으로 소비 회복이 더딘 점은 자영업자 가구의 채무 상환 능력이 개선되는 것을 제약한다”며 “채무 조정과 함께 재취업 지원 등 소득 회복을 위한 미시적 정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경기 침체와 고물가, 금리 장기화로 자영업자 매출이 급감하면서 채무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올해 1분기 기준 소상공인의 사업장당 평균 매출은 4179만원으로, 직전 분기에 비해 12.89% 급감했다. 매출 감소는 폐업 증가와 대출 상환 불능으로 이어지고 있다. 같은 기간 개인사업자 대출이 있는 사업장 361만9000개 중 13.8%인 4만9000개가 폐업한 상태인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앞 상점가 폐업 상가에 임대문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 [한주형 기자]


특히 외식업과 숙박업 등 소비자 지출에 민감한 업종이 큰 타격을 입으면서 대출 연체율 상승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외식 전 업종에서 매출이 전 분기 대비 최대 13.6%, 전년 대비 최대 11.1% 감소하면서 내수 침체의 직격탄을 맞았다. 외식업 분야 중 전년 대비 매출 감소가 큰 업종은 술집, 분식, 베이커리·디저트, 패스트푸드, 카페 순이었다. 서비스업 중에서는 숙박 및 여행서비스업이 전년 대비 11.8%로 가장 많이 하락했다.

경기 침체 장기화로 자영업자가 주로 받는 은행 대출의 연체율도 최근 들어 크게 뛰고 있다. 이날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기준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평균 0.67%로 집계됐다. 전달인 0.61%보다 0.06포인트 오른 것이다. 지난해 말 0.48%보다는 0.19%포인트 뛴 수치다. 개인사업자 대출은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이 사업 운영 등을 위해 주로 받는 상품이다.

[매경DB]


새 정부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채무 부담을 덜어주는 배드뱅크를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대상은 5000만원 이하의 대출을 7년 이상 갚지 못한 채무자다. 정부는 상환 능력에 따라 빚을 아예 소각하거나 원금을 최대 80%까지 깎아주겠다는 방침이다. 매입할 돈은 8000억원으로 추산되며 2차 추가경정예산안을 통해 4000억원을 지원하고 나머지는 은행들이 부담할 예정이다. 다만 반복적인 채무 조정이 가져올 형평성 논란과 재정 부담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다.

이종렬 한은 부총재보는 “빚을 탕감해 전체적인 부채 비율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면서도 “문제는 형평성이다. 결국 재원 조달 문제인데, 이러한 부작용은 보완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채무 상환 부담은 자영업자에 국한되지 않고 기업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1분기 기준 기업 대출 연체율은 2.84%를 기록해 직전 분기(2.29%)에 비해 0.55%포인트 상승했다. 기업 대출 규모도 1920조4000만원에 달하면서 건설·부동산업을 중심으로 연체율이 빠르게 오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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