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 빠진' 한국은행 굴욕史…은행감독권 탈환 묘수는
수십년 대정부 투쟁에도 IMF 격랑 속 권한 상실감독체계 개편이 모처럼 기회…이창용 정치력 시험대
한지훈
입력 : 2025.07.13 06:07:07
입력 : 2025.07.13 06:07:07

(서울=연합뉴스) 김낙중 기자 = 창립 40주년을 맞은 한국은행 본관 석조 건물.1990.6.11 (끝)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 금융기관 감독권 탈환은 한국은행 숙원(宿願)이다.
중앙은행 독립성 보장을 외치며 정부와 맞선 치열한 샅바 싸움을 배경으로 한다.
애초 금융감독 기능은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등으로 분산돼 있었다.
이중 '은감원'으로 불린 은행감독원은 1950년 한은 설립 때 은행감독부로 출발한 뒤 1961년 원으로 격상된 조직이었다.
일찍이 전두환 정부와 노태우 정부는 각각 1982년과 1988년 은행감독원을 한은에서 분리하는 방향으로 한은법 개정을 관철하려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특히 민주화 이후인 1988년에는 한은 전 직원이 나서 범국민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재무부와 정면충돌을 불사한 끝에 법 개정을 저지했다.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탄 것은 1995년이다.
김영삼 정부는 한은에서 은행감독원을 떼어내고, 은행·증권·보험감독원을 통합한 금융감독원을 신설하는 개편안을 들고나왔다.
그러나 이번에도 한은 직원들은 정부가 '관치 금융'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며 필사적으로 저항해 이를 무산시켰다.
암중모색하던 정부는 1997년 초 금융개혁위원회를 출범해 2년 만에 정부안을 거듭 밀어붙였다.
경제기획원 장관 출신 이경식 전 한은 총재가 총대를 멨다.
그는 1997년 12월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 간의 구제금융 합의문에 직접 서명하면서 통합 금융감독원 신설안을 끼워 넣고는 IMF 요구에 따른 결론이라고 설명했다.
외환위기의 격랑 속에 한은법 개정안은 국회에서도 일사천리로 처리됐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당시 초선 의원으로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법안소위에 참여한 점이 눈에 띈다.
한은은 '한국은행 50년사'에서 "총재와 임직원 견해가 달랐던 것은 처음"이라며 "한은 입지를 매우 어렵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회고했다.
퇴임 후 이 전 총재 초상화는 노조의 거센 반대로 역대 총재들과 달리 한은 강당에 걸리지 못하고 4년 가까이 창고 신세를 졌다.

(서울=연합뉴스) 김병만 기자 = 연합통신과 새해를 맞아 경제정책에 대한 단독 인터뷰를 하는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 1996.1.6 [본사 자료사진](끝)
은행 감독권을 상실한 한은은 '이빨 빠진 호랑이'에 비유됐다.
'한은사(寺)'라 불릴 만큼 야성을 잃고 무기력한 조직으로 전락했다는 우스개도 나왔다.
이따금 한은 권한 회복을 위한 여의도발 논의가 이뤄졌으나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박영선 전 의원이 한은에 은행과 비은행 단독검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한은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이 대표적이다.
2011년에는 송영길 전 의원이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발의해 본회의 상정 직전까지 갔지만 좌절됐다.
이주열 전 한은 총재가 2014년 취임사에서 "한은의 역할과 책무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운을 띄웠다가 당시 최수현 금감원장에게 "부작용만 초래할 것"이라고 반박당한 일도 있었다.
한은에 모처럼 숙원을 이룰 기회가 열린 것은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금융감독체계 개편 의지를 시사하면서다.
마침 임기 초부터 한은사 꼬리표를 떼자며 과감한 구조개혁 의제를 띄웠다가 '오지랖' 비난까지 들은 이창용 총재가 한은을 이끌고 있다.
금융기관 감독권을 되찾기 위해선 정부·여당을 설득, 한은법을 비롯한 관련 법령을 대대적으로 정비해야 하는 만큼 이 총재의 정치력이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등 다른 이슈와 함께 얽힐 수도 있다.
한은은 비은행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하되 한은을 포함한 유관 부처 간 합의 기반의 정책기구가 만장일치로 인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총재가 지난 10일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이 말씀하시듯이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라고 이례적으로 몸을 낮춘 것도 그런 맥락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1997년 한은 노조위원장으로 한은법 개정 반대에 앞장섰던 심일선 씨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중앙은행이 통화신용정책을 제대로 펼치려면 금융감독 기능을 갖고 있어야 가능하다"며 후배들을 응원했다.

(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26일 오후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한은 독립 완전쟁취를 위한 전진대회'에서 참가 조합원들이 한은의 독립성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1995.4.26 [본사 자료사진](끝)
hanjh@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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