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릴 수도 없고, 내릴 수도 없고…전기요금 딜레마 빠진 한국

고득관 매경닷컴 기자(kdk@mk.co.kr)

입력 : 2023.03.07 12:21:17
서울 중구의 한 오피스텔에 계량기가 설치되어있다.[사진 : 김호영 기자]


요즘 가스요금, 전기요금이 오르면서 난방비로 난리입니다. 맘카페에서는 경제도 어려운데 공공요금이 이렇게 올라서야 되겠냐는 분노가 들끓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정반대의 이야기도 나옵니다. 한국전력이 지난 한해 동안 32조6034억원의 적자가 났다는 소식입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전기를 판매하는 회사인 한국전력이 문을 닫을 판이니 하루 빨리 전기요금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전기요금이 오른 건 맞습니다. 그런데 그 인상폭이 일반 가정집이 볼 때는 깜짝 놀랄만한 수준이지만 한전 입장에서는 적자를 메꾸기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인 것입니다. 이게 이 사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기요금을 여기서 더 올리기도, 그렇다고 그대로 내버려두기도 힘든 상황인데요. 이번엔 전기요금을 어떻게 해야할지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연료비 연동제인데…연료비랑 따로 노는 전기요금
전기요금이 왜 오를 수 밖에 없는지는 다들 알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천연가스, 유연탄 등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전력과 관련된 기사에는 ‘전기요금을 에너지가격에 연동시키면 되지 않느냐’라는 댓글이 종종 달립니다. 에너지가격이 오르면 전기요금도 따라 인상하고, 에너지가격이 떨어지면 전기요금도 낮추자는 것인데요. 현재 우리의 전기요금 체계가 이미 연료비에 연동돼 있습니다.

전기요금은 기본요금, 전력량요금(기준연료비), 기후환경요금, 연료비조정요금 등 네가지 항목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전년도 발전 원료 가격을 보고 1년에 한번 기준연료비를 정하고 연료비조정요금을 통해 그해의 에너지가격 변동을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구조입니다.

이런 방식을 통해 지난해 전기요금은 세 차례나 인상됐고 올해 들어서도 크게 인상됐습니다. 지난 1월 전기요금은 전년도 1월에 비해 29.5%나 올랐습니다. 한달에 300kWh 정도를 사용하는 가구의 경우 전기요금이 1년새 1만원 정도 더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4월 ㎾h(킬로와트시)당 6.9원, 7월 ㎾h당 5.0원, 10월 ㎾h당 7.4원을 올린 데 이어, 지난달 ㎾h당 13.1원 인상이 결정된 데 따른 것입니다. 특히 지난달 인상폭은 지난 1981년 이후 최대폭이었습니다.

연료비 연동제로 전기요금이 많이 오르긴 했지만 인상폭이 실제 연료비 가격 상승을 모두 반영한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천연가스 도입가격은 2년 전보다 250% 정도 올랐습니다.

에너지 가격 급등의 직격탄을 맞은 유럽의 상황을 보면 영국의 1월 주택용 전기요금은 지난해 4월보다 253%나 폭등했습니다. 이탈리아는 629%, 독일은 82% 올랐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런 가격 상승을 전기요금에 일부만 반영했는데도 이런 난리가 벌어진 것이죠.

연료비 연동제이긴 한데 제도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현실을 보면 한국전력이 전기료를 얼마나 올려야할지 계산해서 정부에 올리면 정부가 인상폭을 정해주는 방식입니다. 실제로 올 1월의 인상분도 한국전력에서는 kWh당 50원 가량을 건의했지만 정부에서 13.1원으로 결정한 것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연료비에 후행해서 움직이는 측면이 있습니다. 에너지가격이 오를 때 전기요금 인상은 질질 끌다가 나중에 찔끔 인상하면서 한전이 손해를 떠안습니다. 그러다 에너지가격이 떨어지면 전기요금을 약간만 내려서 과거에 봤던 손해를 메웁니다.

이 시기에는 “에너지가격이 하락하는데 전기요금은 안 내린다”는 비판을 받게 됩니다. 전기료를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정해서야 되겠느냐는 비판을 수용해 연료비 연동제라는 제도를 만들었는데 제대로 운영이 안 되는 것이죠.

서울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관리인이 전기 계량기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 이충우 기자]


경제도 어려운데…불난 집에 기름 붓는 전기료?
연료비에 따라 전기요금을 결정한다는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정부를 탓할 수 있을까요? 현재 우리나라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보면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시키는 게 정상적인 의사결정으로도 보입니다.

지난 1월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동월대비 5.2% 상승했습니다. 이런 통계는 숫자보다 오르고 있냐, 떨어지고 있냐는 추세가 중요합니다.

지난해 12월 5.0%보다 상승폭이 커졌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지난해 7월 6.3%에서 정점을 찍은 뒤 물가가 점차 하향 안정화되는 듯 했지만 다시 튀어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1월 소비자물가를 반등시킨 주범으로 전기요금과 도시가스요금 등이 꼽히고 있습니다.

전기요금의 상승은 가계에만 부담을 주는 게 아닙니다. 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의 부담이 커지면서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을 올리고 이 때문에 물가가 더 오르는, 또다른 악순환을 낳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1월 생산자물가지수는 전월대비 0.4% 상승했습니다. 지난해 11월 -0.3%, 12월 -0.4%에서 상승 전환한 것입니다.

이 통계를 발표하는 한은도 “연료비, 기후환경 비용 상승을 반영한 전기요금 인상 영향”이라고 콕 집어 전기료를 저격했습니다.

경제가 잘 굴러가서 일자리도 많아지고 월급도 오르는 상황이라면 물가가 어느 정도 올라도 버틸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경제에는 침체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습니다.

일단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이 역대급으로 부진합니다. 올해 들어 지난달 10일까지 40일 동안 176억달러(한화 약 23조원)의 무역적자가 났습니다. 지난해 연간 무역적자의 40%에 육박하는 규모입니다.

고용 상황도 좋지 않습니다. 올해 1월 취업자수는 전년동월대비 41만1000명 증가했는데요. 2021년 3월 이후 22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숫자입니다.

서울 중구 한국전력공사 서울본부의 모습. [출처 : 연합뉴스]


200원에 사서 130원에 판다고?
한국전력은 직접 발전을 하지 않고 발전회사에서 전기를 사와서, 가정이나 기업에 판매하는 회사입니다.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로 kWh당 206원에 전기를 사서 134원에 팔았습니다. kWh당 72원씩 적자를 보면서 전력을 팔아온 셈입니다. 이러니 적자가 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한국전력의 지난해 적자 33조원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오실 수 있습니다. 한전 다음으로 적자를 많이 낸 회사의 영업손실 규모가 2조원대입니다. 한전의 지난해 적자 33조원은 국내 증시 역대 최대기록을 예약해뒀습니다. 지난 2021년의 한전 적자 5조8465억원이 기존의 기록이었습니다.

올해도 대규모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입니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한국전력의 적자 규모를 9조7000억원 수준으로 예상합니다. 올해 전기요금이 조금 더 오른다는 가정을 반영해도 이렇게 큰 적자가 나는 것입니다.

전기료 인상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른바 호미론을 말합니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한전은 발전사에서 전기를 사올 때 한달에 네 차례에 걸쳐 대금을 지급합니다. 그리고 가정이나 기업으로부터 한달에 한번 전기료를 거둬갑니다. 이미 한전의 곳간을 거의 바닥난 상황입니다. 전기를 사올 돈이 없으니 채권을 발행하거나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충당하고 있습니다.

만약 채권시장이나 은행들에 문제가 생겨서 한전이 현금을 구하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전력거래가 정지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집니다. 우리나라 경제가 올스톱되는 블랙아웃 사태가 터지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이슈는 한전은 시장형 공기업으로서, 기업공개(IPO)까지 한 상장사라는 점입니다. 한전은 산업은행이 32.9%, 대한민국 정부가 18.2%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정부가 51.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머지 48.9%는 민간 투자자가 지분을 갖고 있습니다.

연간 30조의 적자가 나는 상황에서 민간 주주에게는 희생만을 강요하고 있지 않은가 의문이 듭니다. 국내증시에서 모범을 보여야할 상장공기업이 48.9%의 민간 주주를 완전히 무시한 채 51.1% 주주의 목소리만 경영에 반영하고 있지 않냐고 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주주들 사이에선 ‘이럴 거면 민간 지분을 인수해서 국유화해라’라는 반발이 나오고 있습니다.

공익과 주주가치, 현재의 경제상황과 미래의 전력생태계 등 현재 전기료와 관련해 얽힌 문제가 한 둘이 아닙니다. 전기요금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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