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공급망 리스크에 … 기업들 "통상관료 모셔와 대관 강화"

송광섭 기자(opess122@mk.co.kr), 이유섭 기자(leeyusup@mk.co.kr), 이희조 기자(love@mk.co.kr)

입력 : 2023.03.09 19:21:30 I 수정 : 2023.03.09 23:43:09
엘리트 경제관료들의 '官엑시트' 배경은
인플레·칩스법 우선주의 강화
산업부 공무원 몸값 끌어올려
과장급 넘어 장차관도 러브콜
대기업 사외이사로 잇단 영입
탄소중립 관심 환경부도 인기
핵심인재 이동에 기업 웃지만
공직사회 경쟁력 저하 불가피




◆ 공무원 기업행 러시 ◆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대관(對官) 업무를 담당할 경제관료를 발 벗고 영입하고 있다. 과장·실장급 출신을 담당 임원으로 전진 배치하는 한편 장차관을 지낸 인사들을 잇달아 사외이사로 추천하고 있다.

미국·중국 간 패권경쟁에서 비롯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 등에 따라 외국 정부의 정책 변화를 파악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에너지와 공급망 위기가 계속되면서 관련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의 몸값이 치솟는 분위기다. 지난 2년간 산업부를 떠난 과장급 공무원만 20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현상은 국내 기업 경쟁력 강화에는 긍정적일 수 있지만 핵심 인력 유출로 빚어지는 공직사회 역량 저하는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부에서는 핵심 과장들이 이직 한 번으로 연봉을 3~5배 높일 수 있는 기업행을 줄지어 택하고 있다. 인사 적체가 해소되지 않자 1급 출신마저 민간으로 속속 이직하고 있다.

지난해 김정일 전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이 SK그룹 신설법인 SK스퀘어의 글로벌 대관 부사장으로 이동했다. 실장급은 대기업으로 곧장 이직할 수 없지만 SK스퀘어는 신설법인이어서 가능했다.



이처럼 국내 기업이 경제·산업 출신 관료를 영입하고 있는 것은 미국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신(新)통상질서'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삼성전자가 권혁우 전 산업부 과장을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글로벌 대관 담당 상무로 영입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현대자동차그룹도 공무원 출신 대관 담당자 영입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을 포함한 주요 국가마다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미국 IRA 등은 개별 기업이 일일이 대처하기 힘들어 정부부처와 협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SK그룹이 산업부 출신인 김정일 부사장에게 미국을 포함해 대관 업무를 총괄하도록 맡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와 업계 등에 따르면 산업부 장차관 출신도 최근 국내 주요 기업 사외이사에 줄지어 영입되고 있다. 성윤모 전 장관은 효성, 박진규 전 1차관은 LG에너지솔루션, 김재홍 전 1차관은 LS일렉트릭 사외이사 후보로 각각 이름을 올렸다. 이달 주주총회를 거쳐 최종 선임될 예정이다.

이보다 앞서 유명희 전 통상교섭본부장과 정만기 전 1차관은 지난해 11월 각각 삼성전자와 파르나스호텔 사외이사에 선임됐다.

최근에는 탄소중립이 부각되면서 환경부 관료도 인기다. 조석훈 전 물환경정책과장과 오종훈 전 생활폐기물과장은 지난해 SK에코플랜트 상무로 이직했다. 황인목 전 교통환경과장은 김앤장 법률사무소로 옮겼다. 이숭규 전 공정거래위원회 카르텔총괄과장은 지난해 쿠팡 전무로 이동했다.

한 공무원은 "산업과 기술 변화가 빠르게 이뤄지면서 기업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경영 환경에 놓이게 됐다"며 "이 과정에서 정부와 기업 간 협력이 중요해져 전문역량을 갖춘 관료 수요가 늘어난 것으로 해석된다"고 전했다.

빅데이터 시장이 확대되면서 통계청 실무급에서도 기업 이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경인지방통계청 8급 공무원은 최근 대형 포털 업체로 자리를 옮겼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일과 가정 양립이 잘 지켜지고 있는 통계청은 공직사회에서도 인기가 높지만 빅데이터 분야가 주목받으면서 통계청 인력에 대한 기업 관심도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핵심 인력이 민간으로 이동하면서 공직사회 역량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는 염려도 나온다.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민관 사이에서 인력 교류는 분명히 필요하지만 정부의 역할이 여전히 큰 상황에서 관료들이 과도하게 민간으로 빠져나가는 건 공직사회의 경쟁력 저하를 야기할 수 있다"며 "그만큼 공직의 매력이 감소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송광섭 기자 / 이유섭 기자 / 이희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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