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분투칼럼] 아프리카 알고보면⑷: 중고의류 시장의 딜레마
이은별 고려대 언론학 박사
우분투추진단
입력 : 2025.05.22 07:00:05
입력 : 2025.05.22 07:00:05

[이은별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우분투추진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한국의 사계절도 그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그런데도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게 되는 순간은 재활용 수거장의 헌옷함이 가득해질 때다.
긴 겨울이 지나고 따스한 봄기운이 스며들면, 옷장 한편의 해묵은 옷을 비워내는 것으로 다음 계절을 맞는다.
그렇다면 철 지난 헌옷 수거함의 옷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문득 2년 전, 짐바브웨의 수도 하라레에서 마주쳤던 '현대ⅰ어린이집' 가방을 멘 현지인이 떠올랐다.
그는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가방을 아무렇지 않게 메고선 걸어갔다.
어쩌면 수년 전 한국의 어느 아파트 단지 의류 수거함에 넣어진 한 아이의 가방이 만㎞ 이상을 날아 짐바브웨까지 오게 된 건지도 모른다.

담배를 든 그는 어디서 이 가방을 구한 것일까? 2024.8.4.저자 촬영[이은별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아프리카 현지인이 중고 옷을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가성비다.
새옷보다 훨씬 저렴하고, 안목만 있다면 고급 글로벌 브랜드 제품도 건질 수 있다.
빈티지 패션이라는 그럴싸한 명분도 한몫한다.
시장뿐 아니라 거리 곳곳에서 판매상들이 좌판을 까는 곳이 곧 상점이 된다.
바람에 옷가지가 나부끼는 노상 옷가게는 필자가 지낸 짐바브웨 길거리의 흔한 풍경이다.
이러한 중고 옷을 짐바브웨에서는 현지어인 쇼나어로 '마베로'(mabhero)라 부르는데, 옷 꾸러미라는 뜻이다.
해외에서 들어오는 옷들이 낱개가 아닌 한 더미에 약 50㎏ 정도의 커다란 뭉텅이로 수입되기 때문이다.
나라별로 서로 다른 명칭도 흥미롭다.
'마베로'와 같은 의미로 케냐의 '미툼바'(mitumba), 옷더미 속에서 고른다는 의미로 잠비아의 '살라울라'(salaula), 르완다의 '차구아'(chagua)', 뒤적거린다는 의미로 부룬디의 '뷰율라'(vuyula), 이를 위해 허리를 굽힌다는 뜻인 우간다의 '미붐바'(mivumba), 짐바브웨 은데벨레어로 '코싸마'(khothama)가 있다.
가나의 '오브로니 와우'(obroni wawu)나 소말리아의 '후데이'(hudhey)처럼 '죽은 백인의 옷'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다.
과거 콩고민주공화국(DR콩고)에서는 중고 의류를 '베트남'(vietnam)이라 불렀던 사례가 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서구인의 옷가지가 아프리카 흘러들어온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서구 백인의 유산으로 남겨진 옷이 단순한 소비재를 넘어, 아프리카에서 문화적·역사적 맥락을 지닌 상징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아프리카에서 유통되는 중고 의류의 이면에는 개인적 차원의 위생 문제와 사회적 차원의 내수 의류산업의 침체라는 한계가 있다.
실제로 중고의류 시장에서 판매하는 속옷과 수영복을 포함한 아동복, 청바지, 원피스, 운동화 등의 각종 의류·잡화는 장시간 고온다습한 컨테이너로 운반되는 과정에서 박테리아나 곰팡이 등 유해균이 잔류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도 일반 소비자들은 미화 50달러(6만9천965원)가 훌쩍 넘는 새 운동복을 살 여유가 없어, 거리에서 단돈 3달러에 중고 브랜드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다.
그나마 가격 경쟁력이 있는 중국산 의류는 디자인과 내구성이 현저히 떨어져 소비자들은 중고 시장에 몰릴 수밖에 없다.

하라레 거리의 마베로 상인이 필라(FILA) 운동복을 한국 브랜드로 알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설명하고 있다.2024.6.9.저자 촬영[이은별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헌옷 시장의 활성화는 한 국가의 의류산업 발전에 도움 되지 않는다.
아프리카 역내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짐바브웨는 섬유산업 보호와 공장 설립을 통한 일자리 창출 및 지역경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2015년 중고의류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하지만 주요 항구도시가 있는 남아공, 모잠비크에서 들여와 의류 한 더미당 미화 150달러(20만9천895원) 정도로 거래되는 비공식 시장을 정부가 전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웠다.
판매상들은 국경에서 부패한 관리를 매수하거나 철저히 은폐된 비밀 통로를 마련해 단속을 피해 갔다.
케냐, 우간다, 탄자니아, 르완다, 부룬디 등 동아프리카공동체(EAC)들도 2019년까지 중고의류 거래를 점진적으로 폐지한다는 성명을 냈다.
하지만 실제로 수입의류에 높은 관세를 부과한 국가는 르완다뿐이었다.
이러한 연유로 르완다는 2018년 7월 트럼프 1기 행정부에 아프리카성장기회법(AGOA) 자격 일부를 박탈당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메이드 인 르완다'(Made in Rwanda) 정책을 강화했다.
르완다 최대 섬유기업인 '유텍스르와'(Utexrwa), 전통 문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의류 브랜드 '하우스 오브 타요'(House of Tayo), '르완다 클로딩'(Rwanda Clothing)으로 르완다 패션산업은 성장세를 타고 있다.
반면 다른 국가들은 국민의 불만과 AGOA 혜택 축소를 우려해 금지 조치를 철회하거나 유예했다.
결국 2023년 6월 아프리카대륙자유무역지대(AfCFTA)는 중고의류에 대한 무관세 혜택을 제한하는 의정서를 발표했으나 그 실효성은 아직 불투명하다.
짐바브웨는 남아프리카의 주요 면화 생산국이지만 전체 생산량의 약 85%를 원면 상태로 수출한다.
유통 의류의 95%가량은 수입품이다.
이는 방적·염색·봉제 등 제조 인프라와 기술력 부족, 전력난과 열악한 물류 인프라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에 따라 면화 생산이 부족한 르완다는 오히려 자국 패션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반면 짐바브웨 정부는 거리마다 성행하는 중고의류 시장에 뒷짐만 지고 서 있는 형국이다.
의식주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다.
우리가 철마다 양질의 옷을 구매해 닳기 전에 헌옷 수거함에 넣는 동안, 아프리카 시민들은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중고 옷더미를 헤집고 있다.
인간다운 삶을 위한 개개인의 현실적 선택과 의류산업 증진이라는 국가적 가치가 충돌하는 가운데, 국민과 정부 모두 중고 의류에 의존하는 진퇴양난에 놓인 꼴이다.
아프리카, 알고보면 더 이상 중고의류의 덤핑 시장으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이은별 박사 고려대 언론학 박사(학위논문 '튀니지의 한류 팬덤 연구'), 한국외대 미디어외교센터 전임 연구원, 경인여대 교양교육센터 강사 역임.
에세이 '경계 밖의 아프리카 바라보기, 이제는 마주보기' 외교부 장관상 수상, 저서 '시네 아프리카' 세종도서 선정 및 희관언론상 수상.
eunbyully@gmail.com(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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