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임기범의 AI 혁신 스토리…AI 시대 데이터 모으기 운동

이세영

입력 : 2025.07.01 17:31:30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K컬처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 영문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임기범 인공지능경영학회 이사
본인 제공

1997년 겨울, 결혼반지를 빼어내며 금을 헌납하던 이들의 표정은 어떤 빛깔이었을까.

영화에서 본 장면은 현실보다 덜 담담했다.

그 해, 국민 351만 명이 스스로 금을 내놓았다.

누군가는 아이의 돌 반지를, 누군가는 20년 된 금목걸이를 꺼내 들었다.

그렇게 모인 227톤의 금은 22억 달러의 외환으로 바뀌었다.

세계 금융시장의 외면으로 국가 부도의 벼랑 끝에 몰렸던 나라가 단 3개월 만에 그 위기에서 돌아설 수 있었던 이유였다.

한국 사회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도 그때 다시 회복됐다.

사람들은 금을 팔아 돈을 모은 게 아니라, 연대를 통해 '기적'을 창출한 것이다.

28년이 흘렀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자원은 더는 금이 아니다.

디지털 기술의 시대, 우리가 국가적 역량을 좌우하는 결정적 자산으로 마주하고 있는 건 바로 데이터다.

기술은 사람의 언어와 삶을 학습하고, 이를 토대로 예측하고 판단한다.

결국 어떤 데이터를, 누구의 데이터를 학습하느냐에 따라 기술의 성격이 결정된다.

인공지능(AI)이 국가 전략이 된 지금, 우리는 단지 기술을 잘 다루는 나라가 아니라, '우리 삶을 닮은 기술'을 갖는 나라가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의 언어, 우리의 생활, 우리의 문화를 담은 방대한 데이터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국의 AI 기업은 양질의 학습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어 콘텐츠의 절대적 부족, 생활 데이터를 수집하고 가공하는 데 따르는 높은 규제 장벽, 개인정보 보호법의 까다로운 해석이 발목을 잡는다.

특히 한국인의 삶과 문화가 담긴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한 AI는 여전히 한국어 문맥에 서툴고, 한국 사회의 특수한 감정이나 맥락을 놓친다.

이는 성능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 주권의 문제다.

우리 삶을 담지 못한 기술은 결국 다른 나라의 가치와 시선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정부는 거대한 청사진을 펼치고 있다.

'AI 세계 3대 강국'을 목표로 100조 원 규모의 투자를 예고했고, 민간의 대형 모델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X, LG의 엑사원 등 국내 모델은 이미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세계는 과연 누구의 것인가.

하이퍼클로바가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한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언어 모방에 그칠 수도 있다.

데이터가 부재한 기술은 늘 외국인의 얼굴을 한 채 우리 곁에 남는다.

결국 다시 묻게 된다.

우리는 어떤 AI를 원하나.

빠르고 정확한 기술인가, 아니면 우리의 삶을 이해하고 조응하는 기술인가.

후자라면, 지금 필요한 것은 다시 한 번의 '국민운동'이다.

금을 모아 국가를 구했던 1997년처럼, 이제는 '데이터를 모아 기술 주권을 지키는' 새로운 연대를 상상해야 한다.

예컨대 개인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데이터를 기부하거나, 생활 데이터를 공유하는 방식이다.

단, 이는 절대적으로 투명해야 한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어떻게 가공하며, 그 결과를 어떻게 환류하는지를 명확히 공개해야 한다.

시민들이 자신의 데이터가 한국 AI를 더 정교하게 만들고, 그 결과가 자기 삶에 실질적인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믿음을 가질 때, 이 운동은 현실이 될 수 있다.

가령 의료 데이터를 생각해보자.

익명화된 채 공유된 건강 정보는 한국인의 체질과 생활 습관에 맞춘 AI 진단 도구를 만들 수 있게 해준다.

특정 질환에 대한 예측 정확도가 높아지고, 예방과 치료의 질이 높아질 수 있다.

교육 영역도 마찬가지다.

학습자의 패턴을 반영한 데이터가 모이면, 맞춤형 학습 도우미가 탄생한다.

공공행정, 기후환경, 문화예술에 이르기까지 데이터가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가능성을 기술자 몇 명의 손에 맡겨둔 채 멀찌감치 지켜보는 위치에 있다.

기술의 신뢰는 데이터의 신뢰에서 비롯된다.

기술은 혼자 자라지 않는다.

사회가 만들어주는 환경, 시민이 제공하는 자산 위에서만 똑똑해질 수 있다.

결국 데이터 주권은 곧 기술의 자립성과 존엄을 의미한다.

더 많은 시민이 이 흐름에 동참할 수 있으려면, 법과 제도가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처럼 AI 학습용 데이터의 수집조차 법 해석을 둘러싸고 논쟁이 반복된다면, 우리는 또 한 번 기회를 놓칠 것이다.

1997년 금 모으기 운동은 한 번의 헌납이 아니라, 수많은 시민의 참여가 만든 사회적 신뢰의 집합체였다.

이번 데이터 모으기 운동 역시 그러해야 한다.

헌납의 시대는 끝났다.

데이터는 교환과 협력의 자산이다.

보상은 금전적 가치에만 있지 않다.

나의 데이터가 참여한 기술이 다시 나를 이롭게 할 수 있다는 신뢰, 그것이야말로 이 운동의 핵심이다.

데이터를 공유한 개인은 다시 사회 전체의 기술 진보에 기여하고, 그 기술은 다시 그 개인을 돕는다.

이것이 진정한 순환 구조다.

금 대신 데이터를 내놓는다는 것은, 기술 협력만의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의 우리가 어떤 미래를 원하느냐에 대한 사회적 선언이다.

연대를 통해 기술을 만든다는 것은 AI라는 낯선 존재가 더는 우리를 위협하는 기술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기술이 되게 만드는 유일한 길이다.

28년 전 어머니들이 결혼반지를 빼며 국가의 위기를 감당했듯, 이제 우리는 데이터라는 새로운 자산을 나누며 기술의 위기를 함께 돌파해야 한다.

AI 시대의 진짜 경쟁력은, 연대라는 오래된 무기에서 다시 시작된다.

임기범 인공지능 전문가 ▲ 현 인공지능경영학회 이사.

▲ ㈜나루데이타 연구소장 겸 개발총괄 이사.

▲ ㈜컴팩CIO.

▲ 신한 DS 디지털 전략연구소장 역임.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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