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하나면 먹고 사는 걱정 없다니까요”…자고 일어나는 생기는 민간자격증의 그늘

유준호 기자(yjunho@mk.co.kr)

입력 : 2025.07.07 19:41:00
올해 상반기에 3919개 신규 등록
연내 민간자격증 6만개 돌파 유력
‘평생직장’ 약속하더니 ‘뒤통수’ 쳐
수십만원 들여 땄더니 자격 폐지도
선거 댓글팀 모집도 자격증 미끼로
우후죽순 막을 제도 7년쨰 공회전




필라테스 강사를 꿈꾸던 A씨는 강사 양성과정에 지원했다가 낭패를 봤다. 수업료가 600만원에 달했지만 ‘평생직장’이 보장된다는 말에 넘어가 수강 계약서에 선뜻 도장을 찍었다. 하지만 학원 측 광고와 달리 취업 보장은 이뤄지지 않았고, 수업도 전 기수 수강생에게 맡겨졌다. A씨는 학원 측에 환불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민간자격증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면서 관리 사각지대가 커지고 있다. 취업을 위해 돈과 시간을 들여 자격을 땄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엉터리 자격증’이 허다한 데다 취득 후 정작 자격증 등록이 폐지돼 무용지물이 되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정부는 등록갱신제를 통해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자격증을 솎아내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7년째 제도가 도입되지 않고 있다.

7일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운영하는 민간자격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만 3919개 종목의 민간자격이 신규 등록되며 우리나라 전체 민간자격증은 5만9171개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2008년부터 우수한 민간자격을 활성화하고 소비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민간자격등록제를 시행해 왔는데, 추세대로라면 연내 민간자격증 6만개 돌파가 유력하다.

민간자격은 개인, 법인, 단체가 신설해 관리·운영하는 자격을 말한다. 주무부처에 신청해야 하지만 금지 분야만 아니면 사실상 등록이 자유롭다.

필라테스, 요가, 드론 등 최근 사회적 유행과 맞물린 자격증은 그야말로 홍수처럼 범람하고 있다. 지난달 말 현재 등록된 필라테스 관련 자격증은 1438개에 이르고, 요가 자격증은 1192개에 달한다. 산업·기술 분야로 각광받고 있는 드론과 인공지능(AI) 관련 자격증도 각각 646개, 474개에 이른다.

자격증이 범람하다 보니 해당 자격증의 용도를 제대로 알지 못해 소비자들이 낭패를 보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피부 관리와 반영구 시술 자격을 취득하려던 C씨는 ‘합격 또는 창업 시’까지 수업을 진행해 주겠다는 말을 믿고 학원 측과 계약을 맺었다가 된서리를 맞았다.

반영구 시술은 의료자격증이 없으면 진행할 수 없는 시술인데도 학원 측은 이를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다. 뒤늦게 관할 보건소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 C씨는 환불을 요구했지만 학원 측은 이를 거절했다.

등록이 쉽다보니 수개월도 유지하지 못하고 폐지되는 ‘하루살이 자격증’까지 판을 친다. 올해에만 628개 민간자격이 폐지됐는데, 그중 22개는 올해 등록된 자격이었다. 한 교육기업이 운영하는 ‘ESG경영전문가’ 자격은 등록 11일 만에 폐지됐고, 또 다른 연구기관이 운영하는 ‘기업인증지도사’ 자격도 등록 후 불과 한 달 만에 사라졌다.

매년 2000건 안팎의 자격 폐지가 이뤄지는데, 그에 따른 피해는 값비싼 수강료를 치른 소비자들이 보게 된다. 취업준비생 김 모씨는 “몇 시간 수업에 교재비와 자격증 발급비까지 포함해 수십만 원을 썼는데, 하루아침에 휴지 조각이 돼버렸다”며 “‘민간자격증은 자격증 장사’라는 말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취업 서류상 자격증을 기록하게 되니 마냥 무시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급기야 최근에는 민간자격증이 정치 문제로 비화하기도 했다. 보수 성향 교육단체인 리박스쿨 등 3곳은 초등학교 늘봄학교 강사 자격증 발급을 미끼로 ‘자손군’(댓글로 나라를 구하는 자유손가락 군대)이라는 댓글팀을 모집·운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들이 창의체험활동지도사 자격을 광고하면서 ‘초등방과후 늘봄강사 자격증’ ‘교육부 인가 자격증 수여’ 등의 거짓·과장 문구를 사용한 점도 문제가 됐다.

하지만 이 같은 민간자격 관리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대책은 수년째 공회전하고 있다. 2018년 정부는 등록갱신제를 골자로 하는 ‘소비자 보호를 위한 민간자격제도 관리체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자격 관리자의 운영 의지가 없거나 시장 수요가 없는 자격증을 주기적으로 심사해 등록을 취소하겠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제도 개선방안을 담은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장기 표류 중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민간 영역이기 때문에 규제나 제도적 규정이 엄격하지 못한 측면은 있다”며 “관련 입법을 기다리는 한편 민간자격에 대한 과대광고를 모니터하고 추가 민간자격 개선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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