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워치] '트럼프 쇼크' 막을 중앙은행의 부담

경기침체 막을 금리인하·인플레 막을 금리동결 사이 딜레마
김지훈

입력 : 2025.04.09 13:48:30
(서울=연합뉴스) 김지훈 선임기자 = 1979년부터 8년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지낸 폴 볼커는 별명이 '인플레 파이터'였다.

물가 상승이 극심했던 1970년대 말 취임한 볼커는 1979년 10월 6일 토요일 밤에 긴급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어 기준금리를 11.5%에서 15.5%로 한 번에 무려 4%포인트(p)나 올렸다.

'토요일 밤의 학살'이라고 불렸던 당시 금리 인상은 주가 폭락과 기업 파산 등 부작용을 불러왔고 사회적 저항도 심했지만 볼커는 엄청난 뚝심으로 금리 인상을 밀어붙여 결국 물가를 안정시켰다.

미국 연준 건물.

[연합뉴스 자료사진]


반대로 미국 연준의 과거엔 흑역사도 많다.

대공황 당시 루스벨트 정부의 뉴딜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자 당시 연준의장이었던 매리너 에클스는 경기가 안정세를 찾았다고 판단해 지급준비율을 올리는 긴축정책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성급한 긴축 전환 때문에 주가가 폭락하고 실업률이 치솟는 등 부작용이 나타났고 연준은 다시 지준율을 내려 경기부양에 나서야만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진화한 소방수로 평가받는 벤 버냉키 전 연준의장도 2013년 갑작스러운 긴축 시사 발언으로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긴축 발작'(Taper tantrum)을 불러온 적이 있다.

'통화정책의 마에스트로'로 불렸던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의장도 금리인하로 거품을 누적시켜 금융위기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제롬 파월 현 연준의장은 2021년 물가 상승이 일시적인 현상일뿐이라며 대응을 미루다가 이듬해까지 물가가 급격히 오르자 뒤늦게 금리를 인상해 '실기'(失期)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모두 중앙은행의 정확한 정책 판단과 대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역사속의 사례들이다.

상호관세 행정명령 보여주는 트럼프 대통령.

[EPA=연합뉴스]


트럼프 미 대통령의 극단적인 관세부과 정책이 전 세계에 경기침체를 몰고 올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관세가 몰고 올 물가 상승과 무역 둔화 우려로 주가가 폭락하고 소비심리가 얼어붙었다.

월가에선 미국 경제가 1년 내 침체에 빠질 확률이 40%를 넘고 세계 경제의 침체확률도 60%에 달한다는 경고가 나왔다.

경기가 부진하면 금리를 내려야 하는데 관세로 인한 물가 상승이 걱정이다.

물가 상승을 우려해 금리를 동결하거나 오히려 올리면 경기가 더 빠른 속도로 침체에 빠질 판이다.

이러기도 저러기도 어려운 딜레마다.

미국 연준은 일단 관세정책의 영향이 뚜렷해질 때까지 지켜보겠다는 입장이지만, 그러다 대응할 시기를 놓친 2021년의 실수를 되풀이할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온다.

발언하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서울=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2025.2.25 [사진공동취재단] photo@yna.co.kr

한국은행의 입장은 더 어렵다.

꺼지는 경기를 살려야 하는 부담이 가장 크지만, 섣불리 금리인하에 나서면 가계부채나 환율이 걱정이다.

올해 성장률이 0%대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늘어가는 만큼 식어가는 경기를 보며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

더구나 한국은행은 금리 결정 때 미국 연준의 움직임도 신경써야 하는 데다 두 달 뒤 치를 대통령 선거의 경제적 영향까지 고려해야 한다.

그래도 어려운 경제 상황을 헤쳐 나갈 최후의 보루는 중앙은행이다.

재정정책과의 조화로운 정책조합도 필요하겠으나, 금리라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경기 부진이나 물가 상승에 대응해 위기를 극복해나갈 막중한 책임과 권한은 중앙은행에 있다.

이미 전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트럼프가 촉발한 '경제 핵전쟁'에서 살아남을 전략과 대응책을 고심하고 있다.

물가 상승을 막으면서 꺼지는 경기를 살리고 무역전쟁의 타격도 줄일 수 있는 절묘한 정책이 나오길 기대한다.

각국 중앙은행의 어깨가 무겁다.

hoonkim@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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