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아직도 ‘염전 노예’가 있다고?...염산업 노동자 88명에게 물어봤더니

강인선 기자(rkddls44@mk.co.kr)

입력 : 2025.04.26 10:32:47
‘2023 염전 근로자 실태조사 결과’ 요약본 입수
전남 지역 염전 13%만 근로자 고용
10명 중 1명 “폭력・착취 경험” 응답
관련 부처는 “수사 결과 대부분 무혐의”

“강제노동 관행 있다면 개선하고
美 오해한 내용 있다면 소명해
‘강제노동’ 통상 무기화 되는 일 막아야“


지난 3일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이 ‘강제노동’을 이유로 한국 태평염전의 소금 수입을 차단하면서 국내 염전 근로환경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2014년 이른바 ‘염전 노예’ 사건이 처음 불거진 이후 2021년에도 재발했고, 염산업 상당 부분이 도서 지역에서 이뤄지고 있어 쉽게 접근이 어렵기 때문에 걱정이 더 큰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염산업 노동 실태는 어떨까요? 매일경제가 단독으로 입수한 ‘2023 염전 근로자 실태조사 결과(이하 실태조사)’ 요약본을 바탕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해리 염전 사진. 기사와는 무관.


전남 염전 87%가 ‘직원 고용 안해’... 근로자 132명중 10% “폭력・착취 경험”
실태조사 등에 따르면 염전이 고용하는 근로자 수는 크게 줄어드는 가운데 열악한 근로 환경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2월 기준 이 지역에서 가동되고 있는 염전 수는 705개로, 이중 87%에 해당하는 615곳이 근로자를 고용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염전 90개소에서 고용한 근로자는 132명이었습니다.

국회 농해수위 소속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실이 해양수산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가족으로만 운영 중인 염전이 64.7%로 가장 많았으며, 가족과 인력업체 고용 염전이 20%, 고용인으로만 운영되고 있는 염전은 8.8% 등으로 조사됐습니다.

근로자가 줄어들고 있는 이유 첫번째는 ‘자동화’ 입니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염산업은 현재 자동화 기계를 사용해 과거에 비해 근로 강도가 세지 않다고 합니다. 밭농사에 비해 훨씬 수월한 일이라고 인식되고 있기도 합니다. 두번째 이유는 신안 내 산업구조의 변화입니다. 신안 내 50% 정도의 염전이 태양광 산업으로 바껴 소금 생산량이 감소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근로자 132명의 근로 환경은 어떨까요? 일반적인 근로 환경에 비해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근로자 표본 8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들 중 10.1%는 ‘폭력 및 착취 경험을 했다’고 답했습니다.



주요 유형은 언어폭력, 신분증 및 통장 압수, 소모품비 부당, 임금 삭감 등이었습니다. 근로자의 7.2%는 임금 체불을 경험했고, 이중 5.8%는 체불후 모두 받았고 1.4%는 아직 받지 못했다고 응답했습니다. 전년도 조사결과에 비해 소폭 개선되고 있기는 하나 여전히 개선될 여지가 커 보입니다.

근로 중 질병 및 사고 경험이 있는 근로자도 26.1%나 됐습니다. 이중 산재보험으로 처리한 근로자는 없고 61.1%가 개인비용으로 처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4대보험 가입률도 고용보험 13.0%, 산재보험 11.6%, 국민건강보험 7.2%, 국민연금 5.8%에 불과했습니다.

사업주 “4대보험 가입 근로자들이 꺼려”... 설문조사 결과만으로 단정할 수 없단 의견도
사업주들도 억울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실태조사는 사업주 5명도 심층 면접을 통해 조사했는데요, 이들은 일부 근로자에게 업무와 관련해 야단을 치거나 지적하는 것도 ‘인권 유린’으로 보는 편견이 힘들다고 토로했습니다.

4대 보험 가입률이 낮은 이유에 대해서는 ‘현재 돈이 없는 근로자들은 4대 보험 가입으로 기대할 수 있는 혜택에 관심 갖지 않고 임금으로 받기를 요구한다’고 말하기도 답했고, 염산업 작업 특성상 근로기준법을 따르기가 힘든 부분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뜨거운 낮 시간을 피해 이른 새벽부터 일을 시작하고, 늦은 오후부터 다시 일을 시작해 저녁에 종료하는 근로 시간의 특수성이 있다는 겁니다.

사업주들은 ‘염전 노예 섬’이라는 신안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해 일할 사람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도 답했습니다. 1개월 급여를 선급으로 지급받은 근로자가 선급금 사기 행위를 하거나, 술과 도박으로 결근을 하는 등 근태 불량이 계속 생겨 근로자 관리가 쉽지 않다고도 말했습니다.

설문조사가 아닌, 실제 사법 처리 결과를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2021년11월~2022년1월까지 경찰, 노동청, 지자체, 장애인 권익기관 조사 결과 38건의 의심사례가 발견돼 수사를 했다”며 “수사결과 37건은 무혐의가 나왔고, 임금체불 1건은 경미해 불기소 처리됐다”고 말했습니다.

전문가 “‘강제노동’ 있었다면 개선하고, 美 오해는 소명해야”
염산업 근로실태를 면밀하게 조사해 있을지 모르는 불법적인 관행을 개선하는 것은 점점 더 중요한 문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이 최근 이를 비관세 장벽으로 삼아 통상 협상카드로 사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7일 미국 수산물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행정명령을 발표하면서 미국 상무부와 미국 무역대표부로 하여금 60일내로 ‘종합 해산물 무역 전략’을 수립하도록 했습니다. 여기에는 외국 시장에 대한 접근을 개선하고 불공정 무역 관행(불법·비보고·비규제(IUU) 어업) 및 부당한 비관세 장벽을 해결하는 내용이 담겨야 합니다.

지난 2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행정명령에 사인한 뒤 기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를 두고 미국이 수산물 분야뿐만 아니라 농산물과 패키지로 묶어 소고기나 쌀 수입 증대를 위한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지난해 수산물 분야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가 크지 않고, 수산업 규모보다 농축산업의 규모가 더욱 크기 때문입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수산물을 규제해 수산물을 더 수입하라고 하기 보다는 다른 농업 분야 통상 현안과 연계할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도 불법적 노동 관행은 개선하되, 오해가 있는 부분은 분명히 소명해 이를 핑계로 미국이 무리한 통상 요구를 강요하려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서진교 GS&J 인스티튜트 원장(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신장 위구르 지역 인권문제를 언급하는 것을 보고 노동과 무역을 연관지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이를 적극적으로 무역정책에 반영해 영향력을 행사할지는 두고봐야겠지만 (강제노동과 관련해) 개선할 게 있으면 하고 사실이 아닌 부분은 소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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