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온, 전기차 스타트업 슬레이트에 4조원 규모 배터리 공급리비안, 삼성SDI·LG엔솔 배터리 탑재…"K-배터리 기술력 재확인"
장하나
입력 : 2025.04.27 07:21:00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전기차 시장 주도권을 놓고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에게 도전장을 던진 가운데 K-배터리가 미국 완성차 업체들의 핵심 동력으로 자리매김하는 모습이다.
미 전기차 스타트업 슬레이트의 신차 [슬레이트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27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신차를 공개한 미국 유망 전기차 스타트업 '슬레이트'(Slate)는 베이조스가 프리미엄 전략을 앞세운 리비안에 이어 두 번째로 투자한 전기차 기업이다.
슬레이트의 신차는 합리적인 가격과 다양한 커스터마이징 기능을 내세워 보다 폭넓은 소비층을 겨냥한 것이 특징이다.
사명이 테슬라(Tesla)의 철자를 재배열한 '애너그램'이라는 해석이 나올 정도로 현지에서는 슬레이트가 테슬라를 겨냥한 '베이조스의 승부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슬레이트의 신차에는 SK온의 하이니켈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가 탑재된다.
공급 계약 규모는 약 4조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SK온, 미국 전기차 스타트업 '슬레이트' 배터리 공급업체 선정 (서울=연합뉴스) 이석희 SK온 대표이사 사장(오른쪽)과 크리스 바먼 슬레이트 최고경영책임자가 2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롱비치에서 열린 슬레이트 신차 공개 행사에서 기념 촬영하고 있다.2025.4.25 [SK온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업계에서는 슬레이트가 미국 현지 생산 역량과 테슬라 공급망 등을 고려해 전략적으로 배터리 공급사를 선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SK온은 2019년부터 미국에 선제적 투자를 단행하며 배터리 생산 체계 구축에 나섰고, 현재 가동 중인 조지아주 자체 공장을 비롯해 포드, 현대차그룹 등과 합작 공장도 건설 중이다.
미국 내에서 배터리를 양산 중인 비(非)중국계 업체 가운데 테슬라에 배터리를 공급하지 않는 곳은 SK온이 사실상 유일하다.
최근 일부 배터리 업체들이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 극복 방안으로 생산 라인 일부를 에너지저장장치(ESS)용으로 전환하는 점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신생 기업인 슬레이트의 출시 일정에 맞춰 배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업체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요건을 충족하는 '미국산 배터리'를 확보하는 동시에 테슬라와 공급망이 겹치지 않으면서 자사 출시 일정에 맞춰 배터리를 공급받을 수 있는 SK온과 손잡는 것이 전략적으로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조스가 K-배터리와 협력한 것은 SK온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투자한 리비안의 첫 전기 픽업트럭 R1T에는 삼성SDI 배터리가,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R1S에는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가 각각 탑재됐다.
이번 슬레이트 픽업트럭에 SK온 배터리를 탑재하기로 하며 베이조스는 한국 배터리 3사 모두와 손잡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이는 전기차 시장의 주도권을 노리는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 배터리 없이 핵심 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운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라며 "K-배터리의 기술력이 글로벌 전기차 산업에서 필수적이라는 점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재판매 및 DB 금지]
베이조스의 전기차 사업 투자는 단순한 사업 다각화가 아니라 플랫폼 전략의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아마존은 유통망과 물류뿐 아니라 AI 음성인식 비서 플랫폼(알렉사), 클라우드(AWS), 자율주행(죽스), 위성인터넷(카이퍼 프로젝트) 등 전방위적인 인프라를 구축하며 플랫폼 경쟁력을 강화해 왔다.
특히 전기차는 AWS와 알렉사, 죽스 등 기존 아마존의 기술 인프라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실제로 슬레이트는 자사를 단순한 자동차 제조사가 아닌 커스터마이징 기능을 극대화한 트럭 플랫폼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머스크의 정치적 행보를 둘러싼 논란과 제품 라인업 공백이 맞물리며 베이조스가 기회를 잡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테슬라는 당초 올해 상반기 출시 예정이었던 저가형 모델 Y의 출시를 최소 3개월 이상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1분기 미국 내 테슬라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9% 감소한 12만8천대에 그쳤으며, 미국 내 시장 점유율은 43%로 전년 동기 대비 10% 하락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테슬라의 실적 부진으로 머스크가 다시 경영에 전념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베이조스가 내세운 새 전기차 브랜드가 향후 시장 판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