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제일주의, 굉장히 나쁜 현상”...한국 교육문제 지적한 창의력 전도사

이진한 기자(mystic2j@mk.co.kr)

입력 : 2025.05.04 23:01:13
‘창의력 전도사’ 나선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美빅테크 M7 원천은 창의력
소수 창의성이 먹거리 창출

中딥시크 사례서 교훈 얻어
창의적 아이디어로 혁신을

성장률 떨어지는 韓경제
창의적 지도자 나와야 반등


최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우석경제관에서 매일경제와 만난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


한국 거시경제학계 석학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지난 2월 정년 퇴임한 그는 약 20년간 서울대에서 창의력을 교육한 방법을 집약한 책 ‘어웨이킹’을 출간하며 창의력 전도사로 나섰다.

김 교수를 만나 식어가고 있는 대한민국 성장엔진을 어떻게 다시 불붙일지 혜안을 들어봤다.

-미래 성장동력을 어디서 찾아야 하나.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엔비디아, 아마존, 테슬라, 구글 모회사 알파벳, 메타 이렇게 7개 기술기업을 ‘매그니피센트 7’이라고 한다. 이 중 하나인 애플의 시가총액은 지난해 말 3조9000억달러다. 한국 GDP의 두 배가 넘는다. 이들 기술의 원천이 바로 창의력에 있다. 소수의 창의력이 수천만 명 노동력보다 더 큰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 것이다.

-한국 성장률 저하의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지식을 단순히 얼마나 암기하는지 평가하는 모방형 교육이 산업화 시기 선진국 따라잡기의 동력이 됐던 건 분명하다. 하지만 수십 년간 답습하며 남이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것을 개발할 수 있는 본연의 경쟁력 확보에는 실패했다. 한국은 지금 창의력 교육 부재로 ‘모방형 인적자원’만 가득하다. ‘창조형 인적자본’은 바닥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성장률 추락은 당연한 결과다.

최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우석경제관에서 매일경제와 만난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가 혁신형 인적 자원 양성을 위한 창의력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


- AI의 발전 속도가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

▷산업 현장에서 AI 사용이 본격화하면 모방형 지식 노동자 대부분은 대체될 것이다. 생산직은 물론 사무직 일자리도 대거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AI 기술을 통해 새롭게 창출될 일자리가 충분히 많을지는 미지수고, 그 일자리도 창의력을 갖춘 사람에만 주어질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 문제를 돌아봐야 하겠다.

▷한국 수월성 교육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서울대는 모방형 교육 답습이라는 한국 교육의 문제가 집약된 곳이다. 서울대가 창조형 인적자본 배출에 얼마나 이바지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만 35명을 배출한 미국의 시카고대학처럼 창의적인 인재를 배출할 때 국가 성장에 이바지할 수 있다.

-이공계 의대 편중 현상이 심각하다.

▷대단히 나쁜 현상이다. 사회적 롤 모델의 부재가 초래한 결과라는 생각도 든다.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정책에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서울대 정원이 약 3000명인데 그 중 이공계가 2000명 안팎이다. 현재의 학생선발 방식의 타당성을 떠나서, 지금처럼 의대 정원을 늘린다면 장래에 스티브 잡스가 될 잠재력 있는 인재들이 이공계로부터 대규모 이탈은 불가피하다.

-입시제도로 ‘비례경쟁 선발제’를 주장했다.

▷2015년 류근관, 손석준 교수와 함께 진행한 연구에서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대입에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비례경쟁 선발제는 소득과 지역 차이에서 발생하는 불평등 문제를 최소화하려는 방안이다. 1단계로 같은 지역(학교)끼리 비교·평가해서 대입 정원의 2~3배를 뽑고, 2단계에서 전국 단위의 경쟁으로 학생을 선발해 역차별을 막는 것이다. 물론 이때 평가 기준은 창의력이다.

최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우석경제관에서 매일경제와 만난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


-한국 사회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딥시크 쇼크’를 정면교사(正面敎師)의 사례로 삼아야 한다. 후발주자였던 딥시크가 차별화된 전략으로 기술 격차를 좁히는 데 성공한 것처럼 우리한테 최첨단 GPU가 부족하다고 한탄할 게 아니라, GPU 없이도 AI 산업에 뛰어들 수 있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절실하다. 창의적 아이디어로 혁신을 끌어낼 창조형 인적자본이 필요하다. 또 창의적인 지도자가 나올 때 한국 경제도 신성장 동력을 찾아 반등할 수 있다.

-창의적 조직을 만들기 위한 리더의 덕목은.

▷리더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창의적이지 않은 지도자 밑에서 창의성은 나오지 않는다. 창의성을 강조하고 있는데도 성과가 없다면 구호만 외치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그다음은 혁신적 조직으로의 변화다. 모든 구성원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 한 명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면 성공 확률은 10%도 안 된다. 그러나 30명이 아이디어를 내면 그중 하나가 성공할 확률이 100%에 가까워진다.

-정치 지도자들에게 주문할 것이 있다면.

▷인류 문명사를 살펴보면 창의적 아이디어는 흥하는 나라의 중요한 특징이었다. 국가 지도자가 그 아이디어를 끌어 나갔다. 같은 맥락에서 사회가 아이디어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아이디어의 가치는 비트코인에서 보듯이 2700조원 이상의 가치를 가질 수도 있다. 한국은 정부의 아이디어 공모대회 전국 1등 상금이 기껏 수백만 원 수준이다. 그러니 수백만 원 이하의 아이디어만 나온다. 아이디어에 대한 획기적인 보상과 함께 채택된 아이디어의 재산권을 지켜줘야 한다.

-AI 시대에 인문학을 강조하는 의견도 많다

▷인문학의 중요성에 공감한다. 이공계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발상을 전환할 수 있는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동력이 될 수 있다. 다만 인문학에 관한 공부가 인문 지식 습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창의력 훈련으로 연결돼야 한다. 장자는 창의력 배양에 가장 좋은 동양 철학자다. ‘장자’ 첫머리에 등장하는 ‘붕(鵬)’은 한번 날면 하늘을 덮을 만큼 큰 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산물이지만 비행기의 기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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