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분할 10곳 중 8곳이 주가 하락

강민우 기자(binu@mk.co.kr)

입력 : 2023.06.25 16:52:14 I 수정 : 2023.06.25 19:24:13
8년간 인적분할 나선 45사
주식가치 오른 곳 11곳뿐
"자사주마법 소액주주에 피해
신설회사 신주배정 금지해야"






인적분할을 단행한 기업 10곳 중 8곳은 분할 후 주식가치가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기업들이 사업가치 제고를 내세우지만 시장에서 최대주주의 지배력 강화 차원에서 인적분할이 이뤄졌다는 평가를 하는 사례도 적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다른 나라처럼 인적분할 시 자사주에 신설법인 신주를 배정하는 '자사주의 마법'을 금지하는 등 규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16년 이후 이뤄진 인적분할 재상장 사례 45건을 분석한 결과 주식가치가 분할 이전보다 상승한 경우는 24%(11건)에 불과했다. 인적분할 기업의 76%는 주식가치가 하락한 셈이다. 인적분할을 발표한 기업의 거래정지 직전일 주가를 분할 후 존속·신설회사의 주가(22일 종가 기준)와 비교한 결과다. 예를 들어 0.8대0.2의 비율로 인적분할된 존속법인 A사와 신설법인 B사의 주가가 각각 1만원과 5000원이라면 A사 주가엔 0.8을 곱하고 B사 주가엔 0.2를 곱해 이를 더한 9000원(8000원+1000원)을 거래정지 전 주가와 비교했다.

기업들이 인적분할을 실시하는 목적에 따라 주주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업 효율성 향상이 아닌 최대주주의 지배력 강화에 활용되면 주식가치가 떨어졌다는 설명이다. 통상 인적분할에 따른 지배력 강화는 자사주를 통해 이뤄진다. 자사주를 보유한 기업은 인적분할 시 신설회사의 신주를 자사주에 배정할 수 있다. 자사주엔 없던 의결권이 되살아나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존속법인의 대주주가 신설회사에 가지는 지배력이 커진다. 이른바 자사주의 마법이다.

아울러 현물출자 유상증자가 함께 이뤄져 최대주주의 지배권이 더욱 확대되기도 한다. 분할 후 지주회사 전환 시 최대주주가 신설회사 주식을 출자해 존속회사 지분을 취득하는 방식이다. 지배주주는 따로 자금을 들이지 않고도 지주사 지분을 확대해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까지 키우는 셈이다.

올해 인적분할을 단행한 OCI홀딩스와 이수화학이 시장에선 주로 비교 대상으로 언급된다. 두 회사는 인적분할 후 하루 차이로 재상장됐다. 5월 30일 재상장된 OCI홀딩스와 OCI의 합산 주가가치는 거래정지 전에 비해 10.02% 하락했다. 이수화학과 이수스페셜티케미컬의 합산 주가가치는 106.23% 높아졌다. OCI홀딩스는 현물출자 유상증자 방식을 활용해 OCI를 자회사로 편입한다는 계획을 내놓으면서 대주주 지배력 강화의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이에 비해 이수화학은 지배구조가 정리된 상태에서 인적분할을 한 것이란 평가와 함께 신사업인 정밀화학 부문 가치가 부각되면서 주가가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적분할 시 자사주 마법을 봉쇄하는 등 소액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는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인적분할이 지배력 강화에 활용되면 실질적으로 일반 주주들의 의결권은 사라지고 지분을 빼앗기는 효과가 발생한다"며 "자사주에 신설회사의 신주를 배정하는 것을 금지하고 관련 법 규정을 소액주주에 불리하게 해석하지 못하도록 현재 규제 체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거래소는 올해부터 인적분할 후 재상장하는 기업에 대해 강화된 심사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물적분할처럼 인적분할에 대해서도 소액주주 간담회를 열어 인적분할 찬성 여부를 확인하고 주주들의 의견을 듣는 절차를 거치도록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최근 동국씨엠과 동국제강을 분할 후 재상장시킨 동국홀딩스는 정정 증권신고서를 제출해 잉여 현금흐름의 최대 30%를 배당금액으로 설정하는 등 주주환원 확대 계획을 포함하기도 했다.

거래소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이달 초 자사주 제도 개선 계획을 발표하기 전부터 이미 상장기업과 투자은행(IB) 관계자들에게 바뀐 심사 기준을 적용하겠다고 알린 상황"이라며 "지배구조 차원의 질적 심사 기준이 마련돼 있어 이를 근거로 주주 보호 노력을 심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인적분할 재상장 사례는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올해에만 7곳(동국씨엠·동국제강·이수스페셜티케미컬·OCI·현대그린푸드·한화갤러리아·코오롱모빌리티그룹)이 재상장을 마쳤다. 지난해(2곳)와 2021년(6곳), 2020년(5곳)을 이미 넘어선 상황이다. 지난해 유독 인적분할을 발표한 기업이 많았던 영향이다. 조선내화, STX, AJ네트웍스 등이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해 숫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자본시장 관계자는 "인적분할에 대한 금융당국의 규제가 임박했다고 판단한 기업들이 서둘러 인적분할을 추진해 기업구조 재편을 마치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강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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