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락 생산량 20년 만에 10분의 1로…남해 주종 새꼬막이 추월"알 품은 꽃게 금어기 전 출현…기후변화로 금어기 재설정할 판" 서식 수온대 북상 가속…새조개·우럭조개 등 대체어종 연구 활발
최해민
입력 : 2025.05.17 07:11:01
[※ 편집자 주 = 기후 온난화는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습니다.
농산물과 수산물 지도가 변하고 있고, 해수면 상승으로 해수욕장은 문 닫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역대급 장마와 가뭄이 반복되면서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기도 합니다.
'꽃 없는 꽃 축제', '얼음 없는 얼음 축제'라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생겨납니다.
이대로면 지금은 당연시하고 있는 것들이 미래에는 사라져 못볼지도 모릅니다.
연합뉴스는 기후변화로 인한 격변의 현장을 최일선에서 살펴보고, 극복을 모색하는 기획 기사를 매주 송고합니다.]
화성 연안 새꼬막 방류 모습 [백미리 어촌계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화성·안산=연합뉴스) 최해민 기자 = "한 5~6년 된 것 같아요.
바지락을 100마리 잡으면 90마리는 이미 죽은 상태더라고요.
아무리 종패를 뿌려놓아도 1년 반 뒤 잡을 때는 이 모양이니 바지락 어획량은 갈수록 줍니다.
언젠가 화성 바다에서 아예 바지락을 볼 수 없는 날이 올까 봐서 걱정이네요." 경기 화성시 서신면 백미리에서 21년째 어촌계를 이끄는 김호연(61) 어촌계장은 최근 바지락 조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화성 8미(味)' 중 하나로, 한때 어민의 주 소득원이던 바지락이 점점 줄더니 몇 년 전부터는 갯벌에서 잡히는 어종 자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바닷속이 변해가는 걸 체감할 수 있을 정도라는 한다.
김 어촌계장은 "언제부턴가 이상고온으로 바닷속이 이상하게 변해가고 있다"며 "지금은 화성 앞바다에 들어가면 전남 여수나 제주에서나 보던 산호, 물고기가 보인다"고 전했다.
바다가 변하면서 주력 어종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특히 경기 바다에서 바지락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는 이제 새꼬막, 새조개 등 다른 어종으로 채워지고 있다.
금어기 전 알을 품었던 꽃게 [연합뉴스.재판매 및 DB 금지]
◇ 슬그머니 없어진 '바지락 축제'…남해처럼 변해가는 경기 바다 17일 경기도해양수산자원연구소에 따르면 경기 바다의 바지락 생산량은 2000년 6천556t, 2001년 6천488t, 2002년 6천857t 등으로 2000년대 초반까지 연간 6천t을 넘었다.
하지만 이후 생산량은 급격히 줄더니 2022년 1천267t, 2023년 1천209t, 지난해 757t 등으로 1천t 미만으로 줄었다.
2000년과 지난해를 비교하자면 24년 만에 88.5%(5천799t) 감소한 것이다.
화성 연안의 바지락 생산량이 크게 줄면서 궁평리 일대에서 성행하던 지역 축제가 감쪽같이 사라진 사례도 있었다.
2010년 화성포구 황금 바지락축제 포스터 [화성시 제공 자료사진.재판매 및 DB 금지]
'화성포구 황금 바지락 축제'는 2004년 제1회 행사를 시작으로 2010년까지 열린 것으로 전해진다.
궁평항에서 만난 한 어민은 "한창 바지락이 많이 나올 때 나름 크게 열리던 바지락 축제가 10여년 전쯤 사라진 걸로 기억한다"며 "바지락이 안 나오는 데 무슨 축제를 하겠느냐"고 말했다.
화성시 관계자는 "당시 자료를 찾아보면 바지락 어획량이 점차 줄면서 행사를 개최하기 어려워진 것으로 보인다"며 "마침 보트쇼 행사가 새로 생기면서 바지락 축제는 보트쇼의 체험 프로그램 정도로 축소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고 말했다.
바지락 감소는 서식지 감소와 어업인 고령화 등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무엇보다 이상고온 등 기후변화가 주 원인으로 지목된다.
국가통계포털 연간 평균 수온 현황을 보면 화성 연안은 2005년 16.03도에서 2014년 16.16도, 2023년 16.35도로 16도 안팎을 들쭉날쭉하다가 지난해 17.50도로 정점을 찍었다.
20년 만에 평균 수온이 1.47℃ 높아진 것이다.
특히 지난해 국립수산과학원은 2017년 고수온 특보 발령제를 실시한 이래 최장인 71일간 전국 연안에 고수온 특보를 발령하기도 했다.
어민들 사이에선 이상고온 현상에 올여름도 장담할 수 없다는 우려가 벌써 나온다.
백미리 어촌계 최승용 간사는 "바다가 변하고 있는 걸 저희가 현장에서 체감하고 있다"며 "바지락이 준 것도 문제지만, 크기 또한 많이 줄어 어가에는 큰 손실이 된다"고 전했다.
이어 "특히 작년에는 종패를 많이 뿌려 놨는데 가을까지 이어진 고수온 현상 탓에 대부분 죽어서 올해 어획량도 기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궁평항 해오름수산시장 상인들도 기후변화를 실감한다고 한다.
한 상인은 팔던 꽃게의 배를 보여주며 "이 꽃게는 배 안쪽 털이 퍼져 있는 것으로 볼 때 알을 품고 있었던 개체"라며 "아직 산란기 금어기가 안됐는데 알을 이미 품었던 꽃게들이 잡힌다는 건 기후변화를 고려해 금어기 설정을 다시 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새꼬막 수확 모습 [백미리 어촌계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 빈자리 메우는 새꼬막…'㎏당 18만원' 새조개 서식 연구도 주로 남해안에서 나던 새꼬막이 지금은 경기 바다에 둥지를 틀었다.
기후변화에 대응해 어종 변화를 현장에 적용하는 데엔 적어도 10년의 시간이 걸린다.
2015년 5월 바지락이 감소하는 위기감에 새로운 어가 소득원 연구를 위해 경기도해양수산자원연구소는 전남에서 2g 내외의 어린 새꼬막 6t을 들여와 화성 제부도 갯벌에서 생육 기초연구를 시작했다.
약 1년간 현지 적응 시험 결과 종패 생존율은 66%, 평균 무게는 9.9g에 달해 전남지역 종패 생존율(평균 약 50%)과 무게(평균 9.5g)를 상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변화 영향으로 서식 가능 수온대가 북상하면서 경기도에서 새꼬막 양식 시험이 성공하게 된 것이다.
이후 새꼬막은 경기 바다의 새로운 소득원으로 부상했다.
새꼬막 생산량을 보면 시험 양식으로 2016년 3t이 어패류 생산량 통계에 처음으로 잡힌 후 2019년 44t, 2023년 188t에 이어 지난해엔 바지락 생산량(757t)을 넘어선 902t을 기록했다.
경기도해양수산자원연구소서 연구 중인 새조개 [연합뉴스.재판매 및 DB 금지]
경기도에선 새꼬막 외에도 어종 변화를 위한 다양한 서식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먼저 ㎏당 18만원으로 고소득 품종인 새조개는 2023년 2월 22일 백미리 일대에서 처음으로 발견됐다.
어민들 제보로 서식 상태를 확인한 연구소는 이후 같은 해 4월 현지 조사를 통해 서식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종자 생산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소는 지난해 새조개 1만 마리를 도리도 인근에 방류했으며, 올해 9~10월 정착 여부를 확인할 예정이다.
㎏당 가격이 바지락(약 3천원)의 4배에 달하는 우럭조개도 경기 연안 갯벌에서 자연 발견된 후 정착 연구가 진행 중인 어종이다.
연구소는 2020년 8월 갯벌 조사 과정에서 오이도 인근에서 1마리의 우럭조개를 발견했다.
이후 공식 생태조사를 통해 지난해 3월 오이도, 도리도에서, 올해 4월에는 탄도항과 오이도에서 각각 자연서식 상태의 우럭조개를 발견했다.
연구소는 우럭조개의 연안 갯벌 정착을 위해 지난해 10월 화성·시흥 갯벌에 어린 우럭조개 17만 마리를 방류하기도 했다.
경기도해양수산자원연구소 설강수 해양수산연구사는 "경기 바다는 수심이 얕아 기후변화에 민감하고 수온이 기상 영향을 많이 받는 특성이 있다"며 "경기 바다 주력 품목이던 바지락 생산량이 감소한 이후 새꼬막은 자리를 잡았고, 남해안 고수온 지역에서 주로 서식하던 어종 중 새조개와 우럭조개에 관한 서식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