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경제

(세종=연합뉴스) 민경락 박재현 기자 = 한국 경제의 주력 산업으로 꼽히는 제조업 부진이 거듭되면서 고용 한파가 날로 심해지고 있다.

미국의 관세정책 불확실성은 앞으로 제조업 고용 시장을 더 옥죌 것으로 보여 청년 중심으로 고용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진다.

이런 상황에도 이번 대선에서는 일자리 공약이 부각되지 않고 있다.

일자리 위기가 경기 부진뿐만 아니라 제조업 내 반도체 편중, 주력산업 혁신 부재 등 구조적인 문제까지 얽힌 난제인 탓이다.

전문가들은 혁신을 통해 신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가가 연구개발(R&D) 투자 확대 등을 통해 마중물을 대는 과정에서 양질의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 장단기 악재에 갇힌 제조업…반도체 외날개 비행 '비틀' 18일 기획재정부·통계청 등에 따르면 최근 제조업 일자리과 관련해 위기의식이 부쩍 커지는 분위기다.

김범석 기획재정부 장관 직무대행은 지난 14일 고용동향이 발표된 직후 "내수 회복 지연과 대외 불확실성의 이중고 속에서 제조업 고용 부진세가 확대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달 9일과 16일 당시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등이 같은 취지의 우려를 표명한 데 이어 거듭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지난달 제조업 취업자는 1년 전보다 12만4천명 줄며 2019년 2월(-15만1천명) 이후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다.

작년 7월부터 10개월 연속 뒷걸음질 중이다.

내수 회복 지연, 미국 관세 등 대외 불확실성, 작년 높은 증가세에 따른 기저효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됐다.

수출 호조세에도 제조업 고용이 부진한 배경에는 반도체에 편중된 산업 구조가 있다.

제조업 생산지수(10,000)를 산출할 때 반도체 제조업의 가중치는 1,321.7로 다른 업종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지만 고용 효과는 매우 낮은 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의 취업 유발 계수는 2.1로 전체 제조업(6.2)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고용 유발 효과가 나은 나머지 제조업은 팬데믹 이후 구조적인 부진에 시달리고 있어 고용 여력이 빠듯한 상태다.

올해 들어 반도체를 제외한 제조업 생산지수(2020년=100·원지수)는 1월과 2월 각각 93.2, 98.0을 기록하며 100을 밑돌았다.

기준 연도인 2020년보다 업황이 좋지 않다는 의미다.

지난 3월 생산이 2.2% 늘면서 생산지수는 106.2로 상승했지만 여전히 100 주변을 맴도는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제조업 취업자 줄고, 배달 라이더·돌봄 일자리는 늘고 제조업 취업자는 중장기적으로도 쪼그라드는 흐름이 뚜렷하다.

2013년 17.0% 수준이었던 제조업 취업자 비중은 지난해 15.6%까지 하락했다.

반면 같은 기간 보건업·사회복지서비스업 비중은 각각 6.2%에서 10.3%로 급상승했다.

공공행정·국방·사회보장행정 취업자 비중은 4.0%에서 4.6%로, 운수·창고업 취업자 비중은 5.6%에서 6.0%로 뛰었다.

취업자 비중이 상승한 이들 산업은 돌봄·공공 일자리, 플랫폼 배달 라이더 등 상대적으로 저임금·저숙련 일자리가 많은 분야다.

실제로 작년 10월 기준 월 400만원 이상의 임금을 받는 취업자 비중을 보면 제조업은 37.3%로 보건·사회복지서비스업(9.7%), 운수·창고업(27.4%), 공공행정·국방·사회보장행정(29.9%) 등을 크게 웃돌았다.

상대적으로 임금 수준이 높은 산업의 취업자 비중이 줄고 저임금 산업 취업자 비중이 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일자리 미스매치' 현상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산업연구원이 지난 달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노동시장의 일자리 미스매치 지수는 2010년 상반기 4% 수준에서 작년 상반기 8%대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일자리 미스매치는 청년층의 구직 의욕을 떨어뜨리는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일도 구직활동도 하지 않는 청년층 '쉬었음'은 최근 12개월 연속 늘고 있다.


◇ "제조업 일자리 감소 불가피…정부의 산업 혁신 마중물 역할 필요" 제조업을 중심으로 고용 시장이 고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정작 일자리 창출과 관련된 공약은 이번 대선에서 찾기가 어렵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공정한 노동환경 보장, 산재보험 제도 개선, 하청노동자 교섭권 보장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답답한 고용 상황과 관련한 직접 해법은 내놓지 않았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대기업 신입 공채 도입 장려 등의 공약을 내놨지만 구체적인 전략이 없는 아이디어 수준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문가들은 AI 기술 발달, 생산 자동화 등 영향으로 제조업 일자리가 증가세가 예전만 못하거나 더 줄어들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연구개발(R&D) 투자 확대, 국가 인프라 확충 등을 통한 산업 혁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한국의 주력산업은 10년이 넘도록 선박·석유제품·승용차·반도체 등에 머물러 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산업 혁신을 위해 R&D 투자를 확대하는 과정에서도 청년층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생길 수 있다"라며 "R&D에 충분한 지원이 필요한데 이 부분에서 윤석열 정부는 실패했다"고 꼬집었다.

노동을 생산요소로만 인식해 비용 절감에만 목매지 말고 일자리 창출을 사회적 책임의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금 수준이 양호한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을 정부가 지원하고 고용 안정성이 낮은 저임금 일자리를 양산하는 기업들을 규제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경쟁사들이 외주·하청 등 고용을 외부화해서 비용을 줄이는 상황에서 대부분 기업이 이를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고용 형태 등을 투명하게 공개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을 정부가 지원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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