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을 수학여행 같은 APEC 보여줄게요"

이진한 기자(mystic2j@mk.co.kr)

입력 : 2025.06.22 17:41:01
10월 경주 APEC 정상회의 문화총감독 이도훈 교수
한일 월드컵·부산 APEC 등
굵직한 행사들 그의 손 거쳐
빼어난 韓 문화 정수는 물론
분열의 시대에 통합 전하는
원효대사 '원융회통' 정신
천년고도 경주서 보여줄 것






2025 경주 APEC 정상회의의 문화총감독을 맡은 이도훈 홍익대 영상·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가 인터뷰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이승환 기자


"아시아·태평양 지역 21개 정상을 위한 수학여행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기획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한국의 멋을 알리는 차원을 넘어 수학(修學)의 순간을 연출할 것입니다. 천년고도 경주는 지금 같은 분열의 시대에 꼭 필요한 통합의 가치를 강조하기에 최적의 공간입니다."

오는 10월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문화총감독을 맡은 이도훈 홍익대 영상·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는 최근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며 이번 행사의 콘셉트를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신라의 명승이자 사상가인 원효대사가 강조한 '원융회통(圓融會通)' 정신이 핵심 철학"이라며 "이는 이번 APEC 주제인 '우리가 만들어가는 지속가능한 내일'과도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원융회통은 화쟁사상의 핵심 방법론이다. '둥글게 녹인다'는 뜻의 '원융'과 '모아서 통한다'라는 '회통'을 결합해 '서로 다른 견해들을 부드럽게 녹여 하나로 모은다'는 의미다. 원효대사는 다양한 견해들 사이의 깊은 연관성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더 높은 차원에서 통합하려는 철학적 시도를 추구했다. 이 교수는 이 같은 원융회통 정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신라 천마총에서 출토된 금반지를 동맹과 연대의 징표로서 주목하고 있다.

이 교수는 국내 최고의 메가 이벤트 기획 및 연출자다. 1991년 홍익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제일기획에 입사한 그는 30여 년간 민관의 다양한 국제 행사를 책임졌다. 제17대와 제20대 대통령 취임식 및 2002 한일월드컵 개막식, 2011 대구세계육상대회 개·폐막식,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등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또 2005년 부산 APEC 정상회의 당시 총연출감독으로 정상 만찬 문화공연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그런 그에게도 이번 APEC 정상회의는 쉽지 않은 작업이라고 한다. 이달 초 기준 만찬장을 비롯해 전시장, 국제미디어센터 공정률이 사무국 가이드라인과 비교했을 때 5~20% 수준에 그치면서 준비가 미흡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는 "2005년 부산 APEC 정상회의와 비교했을 때 부족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남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한다면 한국과 경주의 매력을 전하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최근 이 교수는 하루의 대부분을 프로그램 구체화 방안을 고민하는 데 쓴다. 경북도가 5-K 브랜드로 부상시키려는 '5한(한복·한식·한옥·한지·한글)'이 대표적이다. APEC의 주무대가 될 경주 보문관광단지를 중심으로 인근에서 열리는 지역 축제들을 연계하는 방안도 살펴보고 있다. 다만 이 같은 콘텐츠를 아우르는 스토리 라인이 없다면 백화점식 나열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을 언급했다.

이 교수는 "APEC 정상회의를 비롯한 메가 이벤트 기획의 첫 단계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전통적 '정체성(identity·I)'의 발굴"이라며 "이를 기본으로 동시대인 누구나 함께 공감하고 감동할 수 있는 가치를 찾는 '가치화(value·V)' 작업, 그리고 전 인류가 함께 공유해야 할 '꿈(vision·V)'으로 승화하는 IVV 통시적 전략 모델 수립이 그 출발"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난 평창올림픽 때 드론쇼가 찬사를 받은 것도 화려한 기술만이 아닌 올림픽 정신을 스토리텔링에 투영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자신이 맡았던 숱한 행사 중에서도 2005년 부산 APEC 정상회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정상 만찬 문화공연이 열렸던 벡스코를 처음 보고 항구 같다고 느꼈다"며 "정상 만찬장을 '배(ship)'로 연출해 각국 정상들이 상생의 가치관을 향한 항해의 한배를 탔다는 개념을 문화공연에 녹였다"고 회상했다. 이어 "공연이 끝난 뒤 기립박수는 물론 다음 날 노무현 대통령이 '대한민국 국민이었던 게 이렇게 자랑스러운 적이 없었다'는 메시지를 올려 정말 영광이었다"고 덧붙였다.

오랜 기간 메가 이벤트를 연출하면서도 계속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원천은 무엇일까. 이 교수는 다름에서 같음을 찾을 수 있는 '메타콘셉트' 역량을 핵심 비결로 꼽았다. 그는 "사람들이 감탄하는 많은 부분은 기존에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새로움에서 비롯된다"며 "다만 모든 것을 새롭게 할 수는 없다. 달리 말해 익숙한 것에서 새로움을 찾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드는 '원융회통'의 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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