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기금' 20년째 낙제점 받고도 버틴다

류영욱 기자(ryu.youngwook@mk.co.kr)

입력 : 2025.07.30 17:44:42 I 수정 : 2025.07.30 19:47:27
농어가목돈마련기금 등 4개
폐지·통폐합 권고에도 유지
올해만 1조원 넘게 지원받고
일반 예산보다 감시도 소홀
"설치 목적 사라지면 정비를"






20년 넘게 실적 부진 평가를 받아온 기금들이 올해도 정부 예산을 받아 운영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에만 이들 기금에 1조원 넘는 예산이 투입됐지만, 실질적인 정비는 이뤄지지 않았다. 각 부처와 이해관계가 얽힌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매년 수십조 원의 재정적자를 내 정부 재정 운용의 효율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30일 매일경제가 2004년부터 2025년까지 기획재정부 산하 기금운용평가단의 기금존치평가보고서를 전수 분석한 결과 농어가목돈마련저축장려기금, 지역신문발전기금, 양성평등기금(옛 여성발전기금), 청소년육성기금 등 최소 4개 기금이 20년째 '낙제' 평가를 받고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통상 개별 기금은 3년마다 운용과 존치 여부에 대한 평가를 받는다. 이 가운데 이들 기금은 대부분 평가에서 '폐지'나 '조건부 존치', 다른 기금과의 '통합' 등을 권고받은 상태다.

정부 기금은 일반 예산과 달리 특정 목적을 위해 법적 근거로 조성된 재원이다. 건강보험기금이나 국민연금기금처럼 보험료나 민간 부담금 등으로 조성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기금은 정부가 예산으로 매년 직접 재정을 투입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 기금이 국회에 보고되고 심의를 받긴 하지만, 일반 예산보다 감시가 느슨해 본래 목적에서 벗어난 사업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농어가목돈마련저축장려기금이다. 1985년 농어민의 재산 형성을 지원하기 위해 출범한 해당 기금은 현재 자체 재원이 전무하다. 해마다 정부 예산과 한국은행 출연금으로만 채워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수백억 원이 들어가고 있으며, 올해만 해도 511억원이 투입됐다. 올해 기금운용평가단은 "농어민 저축 장려와 재산 형성 효과를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고 기금의 중장기 운용 계획이 없다"며 폐지를 권고했다.

하지만 이 같은 평가는 새롭지 않다. 2004년 첫 평가에서도 이미 폐지 필요성이 언급됐고, 7번의 평가에서 단 한 번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적이 없다.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의 지역신문발전기금 역시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2004년 지역신문 지원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이후 유사 목적의 신문발전기금이 따로 만들어지면서 사업 중복 문제가 꾸준히 제기됐다. 평가단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폐지하고 지역신문 관련 사업은 언론진흥기금의 세부 사업으로 이관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조건부 존치를 권고했다.

여성가족부 산하 양성평등기금과 청소년육성기금도 반복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양성평등기금은 복권기금에서 매년 예산의 96% 이상을 끌어다 쓰고 있으며, 자체 수입이나 여유자금 운영 능력은 사실상 전무한 수준이다.

청소년육성기금 역시 2007년과 2019년을 제외한 모든 평가에서 낮은 등급을 받았다. 자체 수입 비율이 7.1%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청소년 정책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과거 사업을 반복하는 데 그친다는 평가다.

정부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구조적 제약으로 인해 적극적인 조치는 쉽지 않다는 견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평가단의 보고서는 권고에 불과해 법적 강제력이 없고, 실제 기금 폐지나 통합 여부는 주무부처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기금운용평가단에 참여했던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설치 목적이 퇴색된 기금은 과감히 통합하거나 폐지하고, 남겨야 할 기금은 사업 관리 체계를 고도화해 투명성과 효과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류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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