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신평, 25社 분석 美·유럽 오피스 공실률 급등 펀드·리츠·지분투자 8.7조 26%만 손실로 분류해 처리 미래에셋·NH·하나 등 6社 위험 노출 금액 1조원 넘어
국내 주요 증권사들이 해외 부동산 투자에 나섰다가 손실을 보면서 영업이익이 대폭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불확실성과 거래 수수료 감소까지 겹치며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 1조원을 넘긴 증권사가 3년 만에 사라졌다.
15일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자사가 신용도를 평가하는 25개 국내 증권사의 해외 부동산 익스포저(위험 노출액) 총액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14조4000억원이다. 이 중 부동산 펀드 및 리츠·지분투자 형태의 익스포저가 8조7000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미국과 유럽의 부동산 익스포저가 각각 6조6000억원, 5조4000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용도별로는 상업용 부동산이 8조8000억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국내 증권사의 해외 부동산 투자는 대부분 완공된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임차 수익을 수취하는 구조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미국·유럽에서 원격근무 환경이 자리 잡으며 사무 공간 수요가 크게 줄어들어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자 투자 손실로 타격을 받았다. 지난해 4분기 미국 오피스 공실률은 19.6%로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해외 부동산 익스포저 규모가 1조원을 넘는 증권사는 미래에셋·NH·하나·메리츠·신한·대신증권 6곳으로 집계됐다. 이들 증권사의 자기자본 대비 해외 부동산 익스포저는 31%에 달한다.
부동산 투자 손익은 지난해 증권사 실적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하나증권은 지난해 순손실 2673억원을 내며 적자로 전환했다. 하나증권의 부동산 관련 충당금 등 전입액은 212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4% 늘었다.
지난해 미래에셋증권 순이익은 2980억원으로 전년 대비 58% 줄었다. 태영건설을 포함한 PF 충당금 1000억원과 글로벌 투자 목적 자산 관련 손실 3500억원을 반영한 영향이다. 메리츠증권은 순이익 5900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29% 줄어든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반면 부동산 익스포저가 상대적으로 적은 증권사는 실적이 대폭 늘었다. KB증권은 지난해 순이익이 3880억원으로 전년 대비 99% 늘었다. 삼성증권도 투자은행(IB) 부문 성장을 바탕으로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30% 늘어난 5480억원을 기록했다.
대형 증권사 실적이 고꾸라지며 연간 영업이익 1조원을 넘어서는 증권사가 3년 만에 사라지게 됐다. 2020년 미래에셋증권이 업계 최초로 영업이익 1조원을 넘긴 이후로 2021년 삼성·NH·키움증권과 2022년 메리츠증권 등이 영업이익 1조원을 돌파한 바 있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25개 증권사는 해외 부동산 펀드 8조3000억원 중 1조8000억원을 지난해 9월 말 기준 평가손실로 인식한 상태다. 2023~2026년에 만기가 도래하는 펀드들은 평가 손실률이 약 26%로 나타났다.
문제는 국내 증권사들이 투자한 해외 부동산 펀드 중 3조6000억원어치에 대해서는 아직 한 번도 손실로 인식하지 않아 향후 추가 손실이 발생할 리스크가 있다는 점이다.
이예리 나이스신용평가 선임연구원은 "임차 수요 감소와 고금리 기조 지속이 해외 부동산 시장에 부정적 요소로 작용해 국내 증권사의 해외 부동산 익스포저에 대한 추가 손실 발생 가능성이 상존한다"며 "향후 대규모 손실 발생 여부와 금융지주회사의 재무적 지원 규모 등을 종합해 필요시 신용등급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태영건설 워크아웃 등으로 국내 PF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정부가 PF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어 충당금을 추가로 적립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