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국민계정 분석해보니 금융위기때보다 0.2%P 후퇴 환란 이후 네 번째로 저조해 OECD 꼴찌수준 기업 규제에 각국 경쟁적 투자유치에 실기 투자금 619억弗 사상최대 유출
지난해 국내 투자 성적표가 전 세계 금융위기 당시보다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저성장 흐름이 확연해진 데다 해외 진출까지 늘어난 탓에 기업이 국내 투자를 줄이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을 필두로 주요 국가들이 기업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인센티브를 내놓고 있는 점을 투자 위축의 한 원인으로 지목했다. 또 투자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기업 규제 완화와 주요 산업 세액공제 확대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7일 매일경제가 한국은행 국민계정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국내 투자(총고정자본형성) 증가율은 -0.8%에 그쳤다. 1998년 외환위기(-20.5%) 이후 네 번째로 안 좋은 성적이다. 2008년 전 세계 금융위기(-0.6%)나 2021년 코로나19에 따른 경기 타격 국면(2.8%)에 비해서도 저조했다.
총고정자본형성은 정부와 민간에서 집행한 유·무형 투자를 합친 지표다. 지난해 투자액은 568조원으로 전년 대비 4조8000억원 줄었다. 경제 성장률 저하에 따라 시간이 갈수록 투자 증가율이 낮아지고 있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노태우(14.1%)·김영삼(8.6%)·김대중(8.1%)·노무현(3.3%)·이명박(1.8%) 정부까지 계속 하락세였다. 박근혜 정부 때 5%로 반짝 증가했으나 문재인 정부 때 다시 연평균 0.2%로 추락했다. 투자 한파가 이어지며 윤석열 정부 첫해인 지난해 투자 증가율이 급기야 -0.8%로 떨어졌다.
문제는 투자가 역성장 상태에 빠졌는데 기업 자금마저 대거 유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해외로 빠져나간 투자자금은 619억5000만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한 것으로 추산된다. 투자자금 순유출액은 내국인 해외직접투자(ODI)에서 외국인 국내직접투자(FDI)를 뺀 값이다.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에 따르면 한국의 규제환경지수는 지난해 68.2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꼴찌(35위) 수준이다.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도 28위에 머물고 있다.
전망 역시 암울하다. 한국은행은 올해 설비투자 증가율이 -3.1%로 전년(-2.0%)보다 더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가운데 반도체 등 생산시설에 대한 투자 세액공제를 8%에서 15%(대기업 기준)로 올리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K칩스법)은 국회 문턱을 못 넘고 있다. 대기업 특혜라며 반대하던 더불어민주당이 돌연 '한국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만들겠다고 나서면서 시설투자 세액공제 확대 가능성이 되살아나긴 했지만 시간 싸움에서 밀리고 있다. 박재근 한양대 교수는 "반도체 경기가 하강 국면에 들어간 현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쟁력"이라며 "K칩스법을 빨리 통과시켜 한국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3만개 이상 외부감사 대상 기업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 반도체 등 국가전략산업의 세액공제율이 1%포인트 높아지면 설비투자는 대·중견 기업이 8.4%, 중소기업도 4.2% 늘어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종화 고려대 교수는 "자본 투자를 늘리고 신기술을 발전시켜야 인구가 줄더라도 성장률 하락을 막을 수 있다"며 "미국과 중국이 대립하는 상황이 거꾸로 한국에 기회가 될 수 있다. 국내 입지 여건을 개선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