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스타트업 투자받을 때 韓기업은 규제 피하기 바빠…스타트업 186곳 ‘BYE코리아’
이호준 기자(lee.hojoon@mk.co.kr)
입력 : 2025.02.03 06:10:11
입력 : 2025.02.03 06:10:11
해외 소재 한국 스타트업 수 10년새 6배
스타트업 65% “규제 때문에 못 살겠다”
어려운 경기에 투자 3년새 3분의1 토막
스타트업 65% “규제 때문에 못 살겠다”
어려운 경기에 투자 3년새 3분의1 토막
기업용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 솔루션을 제공하는 센드버드는 2014년 본사를 한국에서 미국으로 옮겼다. 미국에서 테크스타즈, 와이콤비네이터 같은 글로벌 액셀러레이터의 지원을 받으며 서비스 수준을 훌쩍 높였다. 미국 이전 7년 만인 2021년 상반기에 기업가치 1조2000억원을 인정받으며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에 등극했다. 미국에서 이룬 성장을 바탕으로 국내 자회사도 2023년 기준 241억원 매출을 달성하는 등 ‘낙수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센드버드가 미국으로 본사를 옮긴 결정적 이유는 해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였다. 센드버드 관계자는 “10년 전만 해도 국내 벤처 업계에서는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고 기업가치도 낮게 평가받았다”면서 “미국에서는 투자자들이 높은 평가를 해주고 투자 이후에도 체계적인 지원을 통해 회사 성장을 도왔다”고 전했다.
이처럼 국내에서 창업하고도 본사를 해외로 옮기는 ‘플립’을 선택하는 스타트업이 늘고 있다.
핀테크 스타트업 A사는 오는 6월 싱가포르로 본사 이전을 앞두고 있다. A사는 디지털 자산과 토큰 발행을 주력 사업 모델로 하고 있는데, 가상자산공개(ICO) 등에서 한국보다 규제가 훨씬 덜한 싱가포르로 본사를 옮기는 게 회사 미래를 위해 더 낫다고 판단했다. A사 대표는 “최근 싱가포르로 본사를 옮긴 한국 스타트업 대부분이 블록체인 관련 회사”라고 밝혔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한국 시장의 불합리한 규제와 위축된 투자를 주된 요인으로 꼽으면서 스타트업을 하기 힘든 생태계라고 지적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창업 7년 미만 스타트업 300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 기업 10곳 중 6곳 이상인 63.4%가 ‘한국에서 규제로 인해 사업상 애로가 있다’고 응답했다. 이들 응답 기업 중 37.7%는 한국의 스타트업 규제 수준이 ‘미국·중국·일본을 비롯한 경쟁국보다 높다’고 답했다.
특히 인공지능(AI) 관련 규제 입법이 과도한 것으로 평가됐다. 지난 21대 국회 4년 동안 AI 관련 규제 법안이 191건 발의됐는데, 개원한 지 8개월밖에 되지 않은 22대 국회에서는 벌써 64건이 발의됐다.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AI 기본법’ 제정안은 고영향 AI를 생명이나 기본권 등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규정해 규제를 강화했다. 또 생성형 AI를 입력한 데이터 구조와 특성을 모방해 글, 그림 등을 생성하는 시스템으로 규정해 규제 대상에 포함했다. 법을 위반하면 30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스타트업 생태계 발전을 위해서는 규제를 혁파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현재 여야 구도로 봤을 때 법률안 개정이 어렵다면 시행령 개정을 통해서라도 국내 스타트업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규제 완화와 스타트업 활성화를 위해 규제샌드박스 제도가 실시되고 있지만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많다. 규제샌드박스 승인을 받으면 임시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지만 전면적인 사업을 위해서는 법령 정비까지 완료돼야 한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 집계를 보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규제샌드박스 승인을 받은 총 709건 중 법령 정비까지 완료된 것은 106건으로, 법령 정비율이 15%에 불과했다.
규제샌드박스 임시 허가를 받은 적이 있는 한 스타트업 대표는 “규제샌드박스 승인만으로는 제대로 사업할 수 없기 때문에 마음 놓고 기술 개발에 매진할 수도 없고 인력을 채용하기도 부담스럽다”고 토로했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은 “인재 확보 측면에서도 미국이 AI, 바이오, 반도체 등 첨단 분야 인재풀이 훨씬 넓어 우수 인력을 영입하는 데 유리하다”고 말했다.
불경기로 인한 벤처 투자 위축도 ‘탈한국’을 부추기고 있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창업가들 사이에서는 국내 주식시장이 부진한 탓에 상장해도 이득이 없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해외 투자 유치에 주력하는 한편, 이왕이면 나스닥에 직상장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며 “이 때문에라도 본사를 해외로 옮기는 게 훨씬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벤처 투자 정보업체 더브이씨에 따르면 국내 벤처캐피털(VC)이 스타트업에 투자한 금액은 2021년 17조9000억원에 달했지만, 2022년 15조3000억원, 2023년 7조6000억원으로 줄더니 지난해에는 6조800억원으로 급감했다. 투자 건수도 2021년 4019건에서 지난해 2188건으로 반 토막이 났다.
■ 용어설명
▶ 플립(Flip) : 국내에서 사업하던 기업이 해외 진출을 위해 본사를 해외로 이전하고 기존 한국 법인은 지사로 전환하는 경영 방식. 해외 투자 유치가 쉽고, 국내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플립(Flip) : 국내에서 사업하던 기업이 해외 진출을 위해 본사를 해외로 이전하고 기존 한국 법인은 지사로 전환하는 경영 방식. 해외 투자 유치가 쉽고, 국내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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