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어린이날·석탄일 같은날…한국만 '음력' 사용?
한국 '양력' 도입에도 '음력' 영향력 여전음력, 농경사회에 유용…현대엔 불편 적지 않아중국 등 아시아권, 양력에 음력 병행 여전
심재훈
입력 : 2025.05.05 06:55:02
입력 : 2025.05.05 06:55:02

(서울=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 부처님 오신 날을 일주일 앞둔 28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 형형색색의 연등이 달려 있다.2025.4.28 dwise@yna.co.kr
(서울=연합뉴스) 심재훈 기자 = 올해 5월 5일은 특별한 날이다.
어린이날과 부처님 오신날이 겹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양력과 음력을 겹쳐 사용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어린이날은 양력으로 매년 5월 5일로 고정돼있지만, 부처님 오신날은 음력 4월 8일이 기준이라 양력으로는 매년 날짜가 달라지는데 올해는 양력 5월 5일과 일치하게 됐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아직도 음력으로 기념일이나 생일 등을 챙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고령층일수록 음력으로 생일을 챙기다 보니 자식들이 음력 생일을 양력으로 계산하다가 깜빡해서 부모의 생일을 놓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제는 달력에도 음력 표기가 안 돼 있는데 음력은 안 쓰면 좋겠다", "기후 변화로 음력 절기가 하나도 안 맞으니 이젠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만 이렇게 음력을 잘 지켜야 하나" 등의 불만이 올라오고 있다.
실제로 스마트폰 등 디지털 시대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겐 음력이 낯선 게 사실이다.
이미 양력에 익숙한 데다 설이나 추석에 대한 의미마저 갈수록 퇴색되고 24절기 또한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력은 인류 문명의 발전과 함께 진화해왔으며, 특히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현재 전 세계가 공식적으로는 양력을 사용하지만 여전히 문화적, 전통적 측면에서 음력의 영향력이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음력은 우리나라만 쓰고 있는 걸까.
음력은 어떤 의미가 있어 지금까지 쓰고 있는 것인지 조사해봤다.
◇ 한국 '양력' 도입에도 '음력' 영향력 여전 음력의 유래는 인류 문명의 초기부터 시작됐다.
음력은 달의 위상 변화와 태양의 운행을 기준으로 하여 자연의 주기를 반영한다.
농사와 어업이 달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음력이 중요하게 사용됐으며 이에 따라 설, 추석 등 주요 명절과 제사 등 전통 의례가 음력을 기준으로 정해졌다.
음력의 시작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2013년 스코틀랜드 북부지역의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기원전 8천년에서 기원전 4천년 사이에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달력이 발견됐다.
이 달력은 매월과 주기적으로 변하는 달의 모습을 나타내는 길이 50m의 구덩이로 이뤄졌다.
구덩이 깊이를 다르게 해서 음력 월을 표시했고 한 달은 열흘씩 묶은 3개 주로 이뤄졌다.
기원전 3000년께 인류 최초의 태음력이 수메르에서 탄생했다는 설도 있다.
수메르인들은 뛰어난 천문 지식을 바탕으로 달의 주기를 관찰하여 달력을 만들었다.
초승달, 반달, 보름달, 그믐달 등 약 29일에 걸쳐 반복되는 달의 모습을 기준으로 태음력을 창안했다고 한다.
기원전 800년께 고대 이집트에서 태음태양력이 등장했다.
이는 음력과 양력을 혼합한 형태로 1년을 12달로 구분하고 30일씩 배정했다.
중국에서도 태음태양력을 완성해 우리나라 등 주변 국가들에 보급해 농업과 계절 변화를 더 정확히 예측할 수 있게 해줬다.

(대구=연합뉴스) 윤관식 기자 = 음력 5월 5일 전통 명절 단오를 이틀 앞둔 20일 오전 경북 경산시 영남대학교 민속촌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이 창포물에 머리 감기 체험을 하고 있다.예부터 단오에 창포를 삶은 물로 머리를 감으면 창포 특유의 향기로 나쁜 귀신을 쫓고, 머리에 윤기가 난다고 믿었다.2023.6.20 psik@yna.co.kr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시대에 백제가 중국 송나라의 원가력(元嘉曆)을 도입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시대 들어 세종 때 칠정산이라는 역법을 만들었는데 태음력의 일종이었다.
1653년 효종 때는 청나라에서 수입된 서양 천문학의 영향을 받은 시헌력(時憲曆)을 채택했다.
1896년 을미개혁 이후 공식적으로는 양력인 그레고리력이 채택됐다.
고종이 1895년 9월 9일에 조칙을 반포해 같은 해 11월 17일(음력)을 1896년 1월 1일로 삼고 이날부터 양력을 공식 문서에 사용했다.
일제 강점기에 이어 해방 후에는 정부가 양력을 정착시키기 위해 양력 1월 1일을 공식 설로 정하고 이틀을 더해 사흘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은 여전히 음력 설만 챙겨 정부는 1989년 음력설에 '설'이라는 이름을 되돌려줬다.
1990년부터는 음력설 전후 하루씩을 공휴일로 지정해 사흘을 쉴 수 있도록 했다.
양력설은 휴일이 1991년 이틀로 줄었다가 1999년부터는 당일 하루로 줄었다.
천문법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공식 역법은 양력이다.
천문법 5조는 천문역법(천체 운행의 계산을 통해 산출되는 날짜와 천체의 출몰 시각 등을 정하는 방법)을 통해 계산되는 날짜는 양력인 그레고리력을 기준으로 하되 음력을 병행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럼에도 설날과 추석 등의 전통 명절은 음력에 따라 정해지는 등 우리나라에서 음력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음력은 한국인의 전통과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로, 세시풍속과 민속놀이 등 다양한 문화 활동과 연계돼있다.
조상 제사, 부모 생신, 가족 모임 등 중요한 행사들이 음력 날짜에 맞춰 진행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2023년 12월 문화재청은 '설과 대보름', '한식', '단오', '추석', '동지' 등 5개 명절을 국가 무형유산으로 지정했다.
전통 예능이나 지식이 아닌 명절이 국가 무형유산이 된 건 처음이다.
문화재청은 "한복 생활, 윷놀이에 이어 가족과 지역 공동체의 생활 관습으로 향유·전승돼 온 명절을 국가 무형유산으로 지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음력 설은 이미 민족의 설로 자리 잡았다.
양력설은 하루, 음력 설은 길게는 5~6일씩 연휴가 되는 상황에서 자연스러운 결과로 볼 수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2006년 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87.7%가 '음력설을 쇤다'고 말했다.
한화그룹의 경우 시각장애인을 위해 '2025년 점자 달력'을 4만부 제작했는데 음력 날짜와 절기, 기념일 등을 점자로 별도 표기하는 등 음력을 지키기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 음력, 농경사회에 유용…현대엔 불편 적지 않아 음력은 한 달의 길이가 달의 변화에 따라 결정되므로, 예전 농경 사회에서는 파종과 수확 시기를 예측하는 데 유용했다.
한 해의 농사가 음력에 달렸기 때문이다.
달의 모양만 보고도 날짜를 대략 알 수 있어 달력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유용했다.
음력을 통해 간조와 만조 시각, 물의 높이를 예측하고, 달의 위상에 따른 물고기 떼의 이동을 예측할 수 있어 어업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

(서산=연합뉴스) 김연수 기자 = 설을 보름 앞둔 10일 오후 충남 서산시 부석면 야산에 음력 기해년 섣달 보름달이 뜨고 있다.미세먼지가 많아 달이 노랗게 보이고 보름은 하루 지났지만 꽉 차 보인다.2020.1.10 yskim88@yna.co.kr
하지만 현대 사회 들어 음력의 문제점이 부각되면서 양력이 공식으로 채택됐다.
음력은 매년 양력보다 11일씩 빨라져 약 3년마다 한 달의 차이가 발생한다.
이에 따라 계절과 달력의 불일치가 생긴다.
양력과의 차이를 조정하기 위해 3년에 한 번씩 윤달을 추가해야 해 달력 사용을 복잡하게 만든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양력과 약 1개월 이상의 차이가 발생해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순수한 음력만 사용하면 온난화로 인한 계절의 변화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워 현재 농경 사회에 적합하지 않으며, 음력은 양력에 비해 지구의 실제 공전 주기와의 오차가 더 크게 발생하기도 한다.
특히,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캘린더 등은 기본적으로 양력을 중심으로 설계돼있어, 음력 정보를 따로 확인해야 하는 불편이 있다.
이런 문제로 인해 음력만을 단독으로 사용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실용적이지 않아 거의 모든 국가가 양력과 병행해 사용하거나 문화적, 전통적 목적으로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 중국 등 아시아권, 양력에 음력 병행 여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아시아권의 많은 국가가 양력을 기본으로 하면서 음력을 병행해 쓰고 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음력을 사용해왔으며, 춘제(春節·설날), 중추절(추석) 등 주요 명절을 음력에 따라 기념한다.
이러한 전통은 농업 사회에서 계절의 변화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필요성에서 생겨났다.
중국인들을 아직도 음력 정월 초하루를 신년(新年)이라고 여긴다.
20세기 초 들어 신년을 대신해 춘제라는 이름이 더해졌다.

(홍콩 EPA=연합뉴스) 홍콩 시민들이 단오인 3일 용선 경주를 하며 노를 젓고 있다.중화권에는 매년 음력 5월 5일 단오에 초나라 시인 굴원(屈原)을 추모하는 의미로 용선 경기를 하거나 댓잎에 밥을 싼 '쫑즈'라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전통이 있다.alo95@yna.co.kr
대만 또한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아 음력 명절을 중요하게 여기며 춘절, 단오절, 중추절 등을 음력에 따라 지킨다.
베트남은 음력 설인 '뗏'을 가장 큰 명절로 기념하며 조상 숭배와 가족 모임을 중요시한다.
설을 포함해 청명, 단오, 추석 같은 동아시아 전통 명절을 따르며 그 날짜 역시 음력을 기준으로 한다.
몽골은 음력 설인 '차강 사르(Tsagaan Sar)'를 기념하며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새해를 축하한다.
싱가포르는 다문화 국가로서 중국계 주민들이 음력에 따른 춘절과 중추절을 기념하며, 말레이계와 인도계 주민들도 각각의 전통 명절을 지킨다.
말레이시아도 중국계 주민들이 음력 명절을 기념한다.
인도네시아는 매년 설날이 네 번 있다.
양력설, 음력설, 이슬람 새해, 힌두교 새해이다.
인도는 힌두교 전통에 따라 음력을 사용해 디왈리, 홀리 등 주요 축제를 지내며 지역마다 다양한 달력이 존재한다.
네팔은 음력을 기반으로 한 '비크람 삼밧(Bikram Sambat)' 달력을 사용하며 다양한 전통 축제를 음력에 따라 지킨다.
미얀마는 전통적으로 음력을 사용해 '띤잔(Thingyan)' 물 축제 등 주요 명절을 기념한다.
이슬람력(히즈리력)은 순수한 음력으로, 달의 주기를 기준으로 한 달(29일 또는 30일)로 구성되며 1년은 약 354일 정도다.
이 때문에 매년 태양력보다 약 11일 짧아져 이슬람의 주요 종교 행사인 라마단 등의 날짜가 매년 양력에서 앞당겨진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공식 행정 달력으로 이슬람력이 사용되며 종교 행사 기준이 된다.
아랍에미리트(UAE)는 공식 및 종교 행사에서 이슬람력을 사용한다.
오만도 국가의 공식 달력으로 이슬람력이 채택돼있다.
쿠웨이트는 이슬람력을 정부 및 종교 행사에 사용한다.
음력 중에 설 같은 중요 명절은 미국 등 일부 서구권에서도 챙기는 추세다.
미국 동부의 뉴저지주(州)의 경우 상원이 음력설을 기념일로 제정하는 결의안을 지난해 1월 채택했다.
이 결의안은 중국의 주장대로 음력설을 '중국설'이나 '춘제'로 표기하지 않고, 의미 그대로 '음력 새해 첫날(Lunar New Year)'이라는 표현이 사용됐다.
결의안은 "여러 아시아 국가는 다양한 방식으로 음력 새해 첫날을 기념한다"며 "중국은 15일간 춘제, 한국은 3일간 설날을 치른다"고 언급했다.

(베이징=연합뉴스) 한종구 특파원 = 중국 최대 명절 춘제(春節·중국의 설)를 앞둔 18일 베이징 최대 기차역인 베이징 서역에서 중국인들이 고향 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2023.1.18 jkhan@yna.co.kr
뉴욕, 샌프란시스코, 아이오와, 콜로라도 등 미국 내 도시와 주 정부도 음력설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2023년 12월 유엔은 음력설을 '선택 휴일'로 지정했다.
이는 음력설이 전 세계 유엔 직원들이 연중 기념할 수 있는 선택 휴일이 됐다는 의미다.
유엔 규정에 따르면 직원들은 연중 9개의 고정 휴일과 유동 휴일을 가질 수 있다.
이 기간 유엔 기구들은 회의 개최를 피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음력 사용은 어떻게 될까.
챗GPT 등 인공지능(AI)의 전망에 따르면 음력은 디지털과 통합되고 웰빙과 연계하며 혼합형 달력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폰 앱과 온라인 플랫폼에서 음력과 양력을 함께 표시하는 디지털 달력의 사용이 증가해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반영할 것으로 예상된다.
음력은 전통 명절과 문화 행사의 날짜를 결정하는 데 계속 사용되며 이는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달의 주기와 개인의 감정, 에너지 수준을 연결 짓는 경향이 늘어 음력을 웰빙과 자기 관리에 활용하는 추세도 늘 것으로 전망된다.
전통적인 점술 및 사주팔자, 궁합 등의 분야에서도 음력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양력을 주로 사용하면서도 음력의 특정 요소를 통합한 혼합형 달력 시스템이 더욱 보편화될 것으로 보인다.
president21@yna.co.kr <<연합뉴스 팩트체크부는 팩트체크 소재에 대한 독자들의 제안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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